담양군청 : (57339)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군 담양읍 추성로 1371 / 대표전화 : 061-380-3114
한국가사문학관: (57392)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877 / 대표전화 : 061-380-2700 팩스 : 061-380-3556
Copyright by Damyang-Gun. All Right Reserved.
홈 > 한국가사문학DB > 가사
용례풀이
장한 강동張翰江東[ 1 페이지 / ]
중국 진晉나라의 장한張翰이 자기 고향의 명산인 순갱蓴羹과 노회鱸膾를 먹기 위하여 벼슬을 그만 두고 강남으로 귀향하였다는 고사
장한 충절(忠節)[팔도안희가 4 페이지 / 전적]
임진왜란 당시에 오성과 한음이 명나라의 원병을 요청하여 이를 성공적으로 이끈 사실을 말한다.
장한(張翰)[권왕가 56 페이지 / 전적]
중국 진(晋)나라 사람. 글에 능하였고, 강동(江東)의 보병(步兵)이라고 불리었음. 왕시랑(王侍郞) : 왕유(王維). 중국 당(唐)나라 때의 시인이요, 화가임. 중국 자연시의 완성자이며, 남종화(南宗畵)의 시조로 불리었음. 시랑(王侍) : 중국의 벼슬 이름. 당대(唐代)의 중서성(中書省) 또는 문하성(門下省)의 실질상의 장관. 후세의 육부(六部)의 차관을 일컬음.
장한(張翰)[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三)3 34 페이지 / 전적]
「張翰」― 晋 吳郡人인데 字는 季鷹이요 性이 至孝하며 淸才가있어 文章을 잘하며 縱任不拘하니 당시에 江東步兵이라 불렀다. 入洛하자 齊王冏에게 벼슬하여 大司馬 東曹椽이 되었는데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吳中의 蔬菜, 蒪羹, 鱸魚膾가 생각나서命駕하여 돌아갔음.
장한(張翰)[석천집(石川集二-三)2-3 53 페이지 / 전적]
진(晉)나라 오군(吳郡)사람. 자는 계응(季膺), 호는 강동보병(江東步兵)이다. 제왕경(齊王冏) 때에 등용되어 동조연(東曹掾)에 이르렀으나, 가을이 되자 고향 오군(吳郡)의 채소와 노어회(鱸魚鱠,농어회)가 먹고 싶다고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다. 효성도 지극한 사람이었다.
장한(張翰)[석천집(石川集二-四)2-4 35 페이지 / 전적]
中國 晉나라 吳郡 사람.벼슬을 하다가 고향의 菰菜와 蓴羹을 그리워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함.
장한가(長恨歌)[월기달노래라(월기달노라) 7 페이지 / 두루마리]
중국 당나라 때에 백거이가 지은 서사시.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잃은 한을 노래한 것으로, 모두 칠언(七言) 120구로 되어 있다.
장한가(長恨歌)[견월가 2 페이지 / 두루마리]
중국 당나라 때 백거이가 지은 서사시로 시 내용은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잃은 한을 칠언(七言) 120구로 노래한 것임.
장한가(長恨歌)[견월가 2 페이지 / 두루마리]
중국 당나라 때 백거이가 지은 서사시로 시 내용은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잃은 한을 칠언(七言) 120구로 노래한 것임.
장한가(長恨歌)[월기달노래라(월기달노라) 7 페이지 / 두루마리]
중국 당나라 때에 백거이가 지은 서사시.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잃은 한을 노래한 것으로, 모두 칠언(七言) 120구로 되어 있다.
장한가(長恨歌)[고분가 11 페이지 / 전적]
중국 당나라 때에 백거이가 지은 서사시로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잃은 한을 노래한 것이다.모두 칠언(七言) 120구로 되어 있다.
장한가(長恨歌)[고분가 11 페이지 / 전적]
중국 당나라 때에 백거이가 지은 서사시로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잃은 한을 노래한 것이다.모두 칠언(七言) 120구로 되어 있다.
장한가(長恨歌)[춘몽가(츈몽가) 10 페이지 / 전적]
서로 견주어 고찰함.
장한가(長恨歌)[춘몽가(츈몽가) 10 페이지 / 전적]
중국 당대의 시인 백거이가 젊은 시절에 지은 서사적인 장가.
장한은 바람처럼 떠나가고[석천집(石川集二-二)2-2 119 페이지 / 전적]
장한의 이야기는 앞에도 나오는데, 가을바람이 불면서 고향의 음식이 생각나자 벼슬을 버리고 바람처럼 떠나갔다.
장한이 강동거(江東去)[몽유가(몽류가) 6 페이지 / 전적]
장한(張翰)은 진(晉)나라 혜제(惠帝) 때 사람으로, ‘장사군(張使君)’이라고도 함. 자(字)는 계응(季鷹). 제왕(齊王) 경(囧)이 그에게 맑은 재주가 있음을 알고 대사마(大司馬) 동조연(東曹椽)을 삼았는데, 하루는 가을 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인 강동(江東)의 순채국과 농어회를 생각하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인생이란 자기 마음에 맞는 생활을 하는 데 가치가 있는 것이지, 명예에 구구히 얽매일 필요가 없다. 죽은 뒤의 명예는 바로 한 잔의 술만 못하다’고 말하고는 벼슬을 버리고 강동으로 떠나갔음.
장한이 강동거(江東去)[몽유가(몽류가) 6 페이지 / 전적]
장한(張翰)은 진(晉)나라 혜제(惠帝) 때 사람으로, ‘장사군(張使君)’이라고도 함. 자(字)는 계응(季鷹). 제왕(齊王) 경(囧)이 그에게 맑은 재주가 있음을 알고 대사마(大司馬) 동조연(東曹椽)을 삼았는데, 하루는 가을 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인 강동(江東)의 순채국과 농어회를 생각하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인생이란 자기 마음에 맞는 생활을 하는 데 가치가 있는 것이지, 명예에 구구히 얽매일 필요가 없다. 죽은 뒤의 명예는 바로 한 잔의 술만 못하다’고 말하고는 벼슬을 버리고 강동으로 떠나갔음.
장형부모(長兄父母)[벌교사(벌교) 13 페이지 / 전적]
맏형의 자리는 부모와 같음을 이르는 말.맏형은 부모처럼 집안일을 두루 돌보기 때문에 생겨난 말.원문에는 '귀형부모'라 쓰여 있음.
장화(長話)[소년애절가 5 페이지 / 두루마리]
긴 이야기.
장화(長話)[소년애절가 5 페이지 / 두루마리]
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