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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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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잘대는지[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二)2 65 페이지 / 전적]

「唐唐」― 蕩蕩과 義가 같은데 浩大하 다는 것임. 老子 指歸에 「淪唐唐 含冥冥」 이라 했음.

조장[성산별곡 11 페이지 / 전적]

지조행장(志操行狀)의 준말로, 지조 있는 생애를 뜻함.

조장(助長)[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一)1 72 페이지 / 전적]

「助長」- 孟子 公孫丑篇 造然章에 「助之長者 揠苗也」에서 나온말인데, 벼 이삭을 자연으로 나오게 아니하고 빨리 나오게 하기 위하여 뽑아 올린다는 뜻임.

조적(祖逖)[석천집(石川集二-三)2-3 123 페이지 / 전적]

진(晉) 나라 사람. 자는 사치(士稚). 기개와 절조가 있는 선비였다. 유곤(劉琨)과 함께 사주주부(司州主簿)가 되어 함께 잠을 자다가 한밤중에 때아닌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유곤을 깨우면서 말하기를 이는 불길한 소리다, 하고 함께 일어나 춤을 추었다. 원제(元帝) 때에 군자제주(軍諮祭酒)가 되고 이어서 예주자사(豫州刺史)가 되었다. 그는 강을 건너다 노를 두드리면서 다짐하여 말하기를 중원(中原)을 평정하지 못하면 다시 강을 건너오지 않을 것이다, 하고

조적전(鳥跡篆)[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五)5 184 페이지 / 전적]

「鳥篆」-古代의 篆體가 鳥跡과 같으므로 말한 것임 史皇 倉頡이 鳥跡을 보고서 글자를 창조했다 함。

조전(雕篆)[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三)3 116 페이지 / 전적]

「雕篆」―雕蟲篆刻의 畧稱인데 詞賦의 末技를 말한 것임。宋史王李傳에 「이때에 학자들이 바야흐로 조전을 숭상하는데 홀로 고문 수십편을 만들어내니 동향의 노선배들이 보고서 스스로 미치지 못한다 여겼다」(時學者方尙雕篆 獨爲古文數十篇 鄕

조전석전(朝奠夕奠[인여가(引轝歌) 7 페이지 / 전적]

조전(朝奠)은 장사에 앞서 이른 아침마다 영전에 지내는 제사 의식. 석전(夕奠)은 상중에 행하는 모든 예절 가운데, 염습 때부터 장사 때까지 매일 저녁에 신위 앞에 제물을 올리는 의식.

조전석전(朝奠夕奠[인여가(引轝歌) 7 페이지 / 전적]

조전(朝奠)은 장사에 앞서 이른 아침마다 영전에 지내는 제사 의식. 석전(夕奠)은 상중에 행하는 모든 예절 가운데, 염습 때부터 장사 때까지 매일 저녁에 신위 앞에 제물을 올리는 의식.

조전석전(朝奠夕奠[인여가(引轝歌) 7 페이지 / 전적]

조전(朝奠)은 장사에 앞서 이른 아침마다 영전에 지내는 제사 의식. 석전(夕奠)은 상중에 행하는 모든 예절 가운데, 염습 때부터 장사 때까지 매일 저녁에 신위 앞에 제물을 올리는 의식.

조정[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四)4 83 페이지 / 전적]

「巖廊」-殿廡를 이름. 漢書에『虞舜之時 遊于巖廊之上 垂拱無爲 而天下平』이라 하였음.

조정(調整)[자책가(가) 16 페이지 / 전적]

어떤 기준이나 실정에 맞도록 조절하거나 고르게 하는 것.

조정(調鼎)[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二)2 149 페이지 / 전적]

「調鼎鼐」― 鼐는 大鼐임. 예로부터 宰相이 天下를 治理하고 百事를 揆度하는 것으로써 鼎의 調味와 같다하여 비유를 하였음. 魏野가 冠準에게 준 詩에 「有官居鼎鼐 無地起樓臺 」의 句가 보임.

조정암[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06 페이지 / 전적]

조광조.

조정암(趙靜庵)[한흥가라 58 페이지 / 전적]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조선 중종 때 사림의 지지를 바탕으로 도학 정치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음. 개혁정치 단행으로 훈구파와 맞서다, 기묘사화 때 능주로 유배되어 사사됨.

조정암(趙靜庵)[한흥가라 58 페이지 / 전적]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조선 중종 때 사림의 지지를 바탕으로 도학 정치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음. 개혁정치 단행으로 훈구파와 맞서다, 기묘사화 때 능주로 유배되어 사사됨.

조정암(趙靜庵)[한흥가라 58 페이지 / 전적]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조선 중종 때 사림의 지지를 바탕으로 도학 정치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음. 개혁정치 단행으로 훈구파와 맞서다, 기묘사화 때 능주로 유배되어 사사됨.

조정암(趙靜菴)[한양가라 57 페이지 / 전적]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조광조(趙光祖, 1482-1519)를 말한다. 김종직 학통을 이은 사림파의 영수로서,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다가 훈구파 남곤 일파가 일으킨 기묘사화 때에 죽임을 당하였다.

조조(曹操)[역대가라(역가라) 8 페이지 / 전적]

후한(後漢) 말기의 무장. 황건적을 물리치고 화북(華北)을 통일하여 위왕(魏王)이라 일컬었다. 그가 적벽대전에서 유비(劉備)·손권(孫權)의 군대에 패하여 중국이 셋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조조(曹操)[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74 페이지 / 전적]

삼국 시대 위나라의 시조(155~220)로 황건의 난을 평정하여 공을 세우고 동탁(董卓)을 벤 후 실권을 장악하였음. 208년에 적벽대전에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게 크게 패하여 중국이 삼분된 후 216년에 위왕(魏王)이 되었음.

조조(曹操)[몽유가(몽류가) 4 페이지 / 전적]

삼국 시대 위나라의 시조(始祖)(155~220). 자는 맹덕(孟德). 황건의 난을 평정하여 공을 세우고 동탁(董卓)을 벤 후 실권을 장악하였음. 208년에 적벽(赤壁) 대전에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게 크게 패하여 중국이 삼분된 후 216년에 위왕(魏王)이 되었음. 권모에 능하고 시문을 잘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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