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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최의(崔竩)[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59 페이지 / 전적]
고려 무인정권기의 집권자로 본관은 우봉(牛峯), 아버지는 항(沆)이다. 어머니가 노비였으나 항의 본처에게 소생이 없었으므로 대를 잇게 되었다.1255년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가 되었으며, 1257년 아버지가 죽자 최영(崔瑛)·채정(蔡貞)·유능(柳能) 등의 옹위로 차장군(借將軍)·교정별감(敎定別監)이 되어 최고집정자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천계 소생으로 조정대신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집권 초기의 선정도 오래가지 못했다.
최익현(崔益鉉)[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62 페이지 / 전적]
조선 후기의 문신(1833~1906)으로 대유학자(大儒學者)로 대원군을 탄핵하였으며 갑오개혁 때 단발령에 반대하였음. 을사조약을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켰으며 유배지 쓰시마[對馬] 섬에서 단식사(斷食死)하였음.
최일천[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26 페이지 / 전적]
미상
최절(摧折)[별한가 17 페이지 / 전적]
억눌러서 제어함.
최제우(崔濟愚)[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49 페이지 / 전적]
동학의 창시자(1824~1864). 초명은 복술(福述)ㆍ제선(齊宣). 자는 성묵(性默). 호는 수운(水雲)ㆍ수운재(水雲齋). 37세 때 동학을 창도하였으며, 후에 사도 난정(邪道亂正)의 죄목으로 체포되어 참형되었다. 저서에 ≪동경대전≫, ≪용담유사≫ 따위가 있다.
최존 최귀(最尊最貴)[권왕가 38 페이지 / 전적]
가장 존귀함을 강조한 말. 가장 지위가 높고 귀함.
최중(最重)[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19 페이지 / 전적]
가장 귀하고 중요함.
최질(衰絰)[송강집(松江集二)2 169 페이지 / 전적]
최(衰)는 상복, 질(絰)은 수요질(首腰絰).
최찬(璀璨)[셔유곡 4 페이지 / 전적]
빛이 번쩍거려서 찬란함.
최첨지[은삭가 7 페이지 / 전적]
조선시대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중추원에 속한 정삼품 무관의 벼슬. 여기에 서는 나이 많은 남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
최첨지[은삭가 7 페이지 / 전적]
조선시대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중추원에 속한 정삼품 무관의 벼슬. 여기에 서는 나이 많은 남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
최최(崔崔)[대동가(동가) 2 페이지 / 두루마리]
산이 우뚝하게 섬.
최충(崔沖)[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52 페이지 / 전적]
고려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984~1068)으로 자는 호연(浩然), 호는 성재(惺齋)·월포(月圃)·방회재(放晦齋)이다. 글씨와 문장에 뛰어났으며 해동공자로 추앙되었다. 문집으로
최충헌(崔忠獻)[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56 페이지 / 전적]
고려 시대 무신 정권기의 집권자(1149~1219)로 초명은 난(鸞), 시호는 경성(景成)이다. 1196년에 동생 최충수와 함께 권신 이의민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하였으며 폐정 개혁(弊政改革)을 위한 봉사십조(封事十條)를 왕에게 올렸다. 이듬해 왕의 측근을 몰아낸 후 최씨 무단 정권을 확립하였다.
최치운(崔致雲)[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50 페이지 / 전적]
조선 전기의 문신. 1433년 평안도 절제사 최윤덕의 종사관으로 야인 정벌에 공을 세웠다. 1439년 공조참판 때 계품사로 명나라에 가 야인 회유에 관해 논의하는 등 수차례 사신으로 명나라에 왕래했다.《무원록(無寃錄)》을 주석하고, 율문(律文)을 강해하는 등 형옥(刑獄)에 대한 왕의 자문에 응했다.
최치원(崔致遠)[고령가곡여자들등님곡이라(고령가곡여들등님곡이라) 2 페이지 / 전적]
(857~?) 신라(新羅) 말의 학자이며 문장가로, 자(字)는 孤雲(고운), 海雲(해운). 시호(諡號)는 文昌侯(문창후)임.
최치원(崔致遠)[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46 페이지 / 전적]
통일 신라 말기의 학자·문장가(857~?)로 자는 고운(孤雲)·해운(海雲)이다. 12세에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격문(檄文)을 써서 이름을 높였다. 저서에
최친지친(最親至親) 최친(最親) 지친(至親)[자책가(가) 6 페이지 / 전적]
더할 수 없이 가까운 친척들. 가장 친하여 가까움. 부자간 · 형제간을 이름. 또는 더할 수 없이 친함.
최판(崔判)[회심곡 10 페이지 / 두루마리]
최판관(崔判官)의 약칭. 죽은 사람의 생전의 선악을 판단한다는 저승의 벼슬아치.
최판관(崔判官)[서가여래가사라 7 페이지 / 두루마리]
죽은 사람에 대하여 생존시의 선악(善惡)을 판단한다는 저승의 벼슬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