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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정원용(鄭元容)[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48 페이지 / 전적]
조선 후기의 문신(1783~1873). 자는 선지(善之). 호는 경산(經山). 헌종이 죽자 영의정으로서 원범(元範)의 영립(迎立)을 주장하여 철종으로 즉위하게 하였다. 암행어사 제도의 부활을 건의하여 삼정(三政)의 문란을 다스리고자 노력하였다.
정원진(程元振)[고봉선생문집 권이(高峰先生文集 券二) 62 페이지 / 전적]
당(唐) 나라 때의 환관(宦官). 대종(代宗)을 옹립한 공로로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에 오르고 빈국공(邠國公)에 봉해졌으며, 금위군(禁衛軍)을 총지휘하여 세력이 막강해지자, 온갖 부정과 비리를 자행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기강이 무너지고 군사들 역시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어 있던 중, 토번(吐蕃) ,당항 (黨項)의 침공을 받고 황제가 섬(陝) 지방으로 파천하게 되자, 그를 처단하여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삭탈관직당하고 전리(田里)로 추방되었다. 그후 삼원(三原)에서 부인의 복장을 하고 장안(長安)으로 들어와 역모(逆謀)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유배가는 도중 죽었다.《新唐書 卷二百七官者 程元振列傳》
정월 십일[형제붕우소회가라 13 페이지 / 두루마리]
정월 십일에.
정월(正月)[노정가라(노졍기라) 34 페이지 / 전적]
음력으로 한 해의 첫째 달.
정월(正月)이라 망일(望日)[과부가(寡婦歌) 2 페이지 / 전적]
세시 풍속 상 음력 ‘정월 대보름’을 가리킴. 망일(望日) : 망(望)이 되는 날. 곧 음력 보름날.
정위(丁謂)[송강집(松江集五)5 6 페이지 / 전적]
송(宋)나라 진종(眞宗)때 사람이다. 그 잘못을 충고하여 준 당시 재상(宰相) 구준(寇準)을 모해하여 찬축(竄逐)하고 말았다. 史畧에 嘗會食朝堂羹拂寇鬚謂起拂之 準正色曰 身爲執政而 亦爲宰相拂鬚耶 謂慙讒之」
정위(定位)[회혼가 1 페이지 / 두루마리]
몸의 위치나 자세를 일정하게 가짐. 또는 그 위치나 자세.
정위(精衛)[송강집(松江集二)2 53 페이지 / 전적]
새 이름인데 이 새가 목석(木石)을 물어다가 동해를 메웠다는 전설이 있음.
정위(精衛)[면앙집(俛仰集 一)1 58 페이지 / 전적]
精衛=古代女人의 名이니 남편이 바다의 風浪에 죽자 女가 죽어 새가 되어 木石을 물어다가 바다에 던저 바다를 메우려 했다 함
정유(鄭裕,1443-1566)[석천집(石川集二-三)2-3 97 페이지 / 전적]
조선 세종,명종 때의 문신. 자는 공작(公綽). 대사간,대사헌,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황해도 관찰사 등을 지냈고 명종 9년(1554)에는 동지사(冬至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정유년[팔역가(八域歌) 29 페이지 / 전적]
1597년 정유재란
정유년[팔역가(八域歌) 39 페이지 / 전적]
1597년
정유년[팔역가(八域歌) 46 페이지 / 전적]
1597년 정유재란
정유년(丁酉年)[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4 페이지 / 전적]
서기 1597년.
정유년(丁酉年)[한흥가라 99 페이지 / 전적]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있었던 해인 1597년(선조 30).
정읍(井邑)[호남가(湖南歌) 4 페이지 / 전적]
전라북도의 남서부에 자리잡은 한 군으로 백제 때의 정촌현이었다. 신라 경덕왕 때 정읍현으로 고치고, 조선조에는 현감(縣監)을 두었다가 1895년 군이 되었다. 1914년 태인(泰仁), 고부(古阜) 두 군의 일부를 병합하여 정읍음군(井邑音郡)으로 개편되었다.
정읍(井邑)[호남가라 3 페이지 / 전적]
전라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시로 전주와 광주의 중간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정응태[팔역가(八域歌) 47 페이지 / 전적]
명나라의 군인으로 주사였는데 양호의 공을 빼앗아 가로채니 양호는 탄핵 호출되었다.
정의(情意)[통륜가(通倫歌) 9 페이지 / 전적]
감정과 의지.정과 뜻.
정의배[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53 페이지 / 전적]
조선 시대의 가톨릭교 순교자(1794~1866). 세례명은 마르코. 기해박해 때에 순교자들의 태도에 감동하여 46세로 입교한 후에 가톨릭교 전교(傳敎)에 힘쓰다가 병인박해 때에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