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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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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염(情炎)[한별곡 8 페이지 / 전적]

불같이 타오르는 욕정.

정염(正炎)[환무자탄가 12 페이지 / 전적]

한 여름.

정영(丁寧)[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3 페이지 / 전적]

조금도 틀림없이 분명함.

정영(精英)[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五)5 184 페이지 / 전적]

「精英」-精華와 같은 말임。

정옥(庭玉)[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五)5 56 페이지 / 전적]

「庭玉」-子弟의 美材를 말함. 晋書謝安傳에「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階庭耳」라 하였음.

정옥(頂玉)[송강집(松江集五)5 82 페이지 / 전적]

당상관(堂上官)이 망건(網巾)에 다는 옥관자(玉貫子).

정옥봉(鄭玉峰)[옥산가라 22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인 정대순(鄭大淳). 본관은 영일(迎日). 호는 옥봉(玉峰). 고려 말 충신 문충공 정몽주(鄭夢周)의 후예. 경상북도 영일 출신으로, 평생 충의로써 나라를 구하는 데 힘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재를 털어 창의하여 최기필(崔琦弼)을 도와 왜적을 토벌하는 데 앞장섬.

정온(鄭蘊)[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30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문신(1569~1641).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ㆍ고고자(鼓鼓子). 부제학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척화(斥和)를 주장하였으며, 이듬해 화의가 성립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저서에 ≪덕변록(德辨錄)≫, ≪동계집≫ 등이 있다.

정온(鄭蘊)[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35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문신(1569~1641).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ㆍ고고자(鼓鼓子). 부제학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척화(斥和)를 주장하였으며, 이듬해 화의가 성립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저서에 ≪덕변록(德辨錄)≫, ≪동계집≫ 등이 있다.

정왕(定王)[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26 페이지 / 전적]

발해의 제7대 왕(?~812). 이름은 대원유(大元瑜). 강왕의 아들로, 영덕(永德)이라는 연호를 썼다.

정왕정왕정씨왕(鄭王鄭王鄭氏王)[길자가(吉字歌) 3 페이지 / 전적]

여기에서 정씨왕은 『격암유록(格菴遺錄)』 등의 예언서에 등장하는 정도령을 뜻하는 것으로 그는 하늘의 섭리인 정도와 정령을 가지고 올바른 세상을 구현하고, 고통 받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도록 하는 존재이다.

정왕정왕정씨왕(鄭王鄭王鄭氏王)[정도선림하정씨가(正道仙林下鄭氏歌) 1 페이지 / 전적]

여기에서 정씨왕은 『격암유록(格菴遺錄)』 등의 예언서에 등장하는 정도령을 뜻하는 것으로 그는 하늘의 섭리인 정도와 정령을 가지고 올바른 세상을 구현하고, 고통 받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도록 하는 존재이다.

정우복(鄭愚伏)[한흥가라 64 페이지 / 전적]

정경세(鄭經世, 1563~1633). 본관 진주(晉州). 자 경임(景任). 호 우복(愚伏)·일묵(一默)·하거(荷渠). 초시(初諡) 문숙(文肅). 개시(改諡) 문장(文莊). 조선 중기 문신 겸 학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워 수찬이 되고 정언·교리·정랑·사간에 이어 1598년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예론에 밝아서 김장생 등과 함께 예학파로 불렸다. 시문과 서예에도 뛰어났다.

정우복(鄭愚伏)[한흥가라 64 페이지 / 전적]

정경세(鄭經世, 1563~1633). 본관 진주(晉州). 자 경임(景任). 호 우복(愚伏)·일묵(一默)·하거(荷渠). 초시(初諡) 문숙(文肅). 개시(改諡) 문장(文莊). 조선 중기 문신 겸 학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워 수찬이 되고 정언·교리·정랑·사간에 이어 1598년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예론에 밝아서 김장생 등과 함께 예학파로 불렸다. 시문과 서예에도 뛰어났다.

정우복(鄭愚伏)[한흥가라 64 페이지 / 전적]

정경세(鄭經世, 1563~1633). 본관 진주(晉州). 자 경임(景任). 호 우복(愚伏)·일묵(一默)·하거(荷渠). 초시(初諡) 문숙(文肅). 개시(改諡) 문장(文莊). 조선 중기 문신 겸 학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워 수찬이 되고 정언·교리·정랑·사간에 이어 1598년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예론에 밝아서 김장생 등과 함께 예학파로 불렸다. 시문과 서예에도 뛰어났다.

정우복(鄭愚伏)[한양가라 63 페이지 / 전적]

조선 전기 때 성리학자인 정경세(鄭經世, 1563-1633)을 말한다. 유성룡의 제자이며 예론(禮論)에 치중하여 김장생(金長生)과 함께 예학파를 형성했다.

정운(停雲)[송강집(松江集二)2 79 페이지 / 전적]

사람을 그리는 데 씀. 陶濳의 詩에 「藹藹停雲」

정운(停雲)[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四)4 40 페이지 / 전적]

「停雲」-陶潜의 停雲詩에『藹藹停雲 濛濛時雨……良朋悠邈搔首廷佇』라 했고 그 題에 『停雲思友也』라 했다. 그래서 後人이 벗 그리는데 使用하고 있음.

정원[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一)1 67 페이지 / 전적]

「大椿」- 長壽木임.莊子 逍遥遊에 「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爲春 八千歲爲秋」라 하였음.그래서 俗稱이 父를 椿堂이라 함.

정원사령(政院使令)[로인가 6 페이지 / 전적]

승정원(承政院)의 한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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