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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칠년대한(七年大旱)[조심가라 9 페이지 / 전적]
7년 동안 계속된 큰 가뭄.
칠년대한(七年大旱)[한양가라 85 페이지 / 전적]
칠 년 동안이나 내리 계속되는 큰 가뭄. 중국 은나라 탕왕 때에 있었던 큰 가뭄에서 유래한다.
칠년대한(七年大旱)[입추가라 2 페이지 / 두루마리]
칠년 동안의 큰 가뭄.
칠년대한(七年大旱)[춘화추동가라 1 페이지 / 두루마리]
비가 오래도록 오지 않는 큰 가뭄
칠년대한(七年大旱)[환무자탄가 26 페이지 / 전적]
칠 년 동안 계속되는 큰 가뭄.
칠년대한(七年大旱)[잣치가라(치라) 5 페이지 / 전적]
칠년 동안 이어온 가뭄.
칠년대한(七年大旱)가뭄 중에 빗발 만나[사친가2(思親歌(二)) 14 페이지 / 전적]
오랫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것이 이루어진다는 뜻. 칠년대한(七年大旱) : 칠 년 동안이나 계속되던 큰 가뭄. 중국 은(殷)나라 탕왕(湯王) 때에 계속되었던 ‘칠년한(七年旱)’으로 연유한 말임.
칠년에도[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一)1 131 페이지 / 전적]
「七年艾」- 孟子 離婁篇에「今之欲王者 猶七年之病 求三年之艾也 苟爲不畜 終身不得」이라 하였음.
칠년을 대한(大旱)하니[녁대가(녁가) 15 페이지 / 전적]
은나라 탕왕 때에 있었던 칠 년 동안이나 내리 계속된 큰 가뭄.
칠리동강(桐江七里)[남여동락가 2 페이지 / 두루마리]
엄자릉이 말년에 낚시를 즐기며 살았던 곳.
칠리동강(桐江七里)[남여동락가 2 페이지 / 두루마리]
엄자릉이 말년에 낚시를 즐기며 살았던 곳.
칠리탄(七里灘)[조심가라 26 페이지 / 전적]
한나라 때의 은사(隱士)인 엄자릉이 낚시질하던 여울. 후한을 세운 광무제와는 어렸을 때에 함께 공부한 사이였지만, 뒤에 무제가 임금의 자리에 올라 하사한 벼슬을 마다하고, 남은 생애를 부춘산(富春山) 동강칠리탄(桐江七里灘)에서 낚시질하며 숨어살았음.
칠리탄(七里灘)[조심가라 26 페이지 / 전적]
한나라 때의 은사(隱士)인 엄자릉이 낚시질하던 여울. 후한을 세운 광무제와는 어렸을 때에 함께 공부한 사이였지만, 뒤에 무제가 임금의 자리에 올라 하사한 벼슬을 마다하고, 남은 생애를 부춘산(富春山) 동강칠리탄(桐江七里灘)에서 낚시질하며 숨어살았음.
칠리탄(七里灘)[죽엽가(쥭엽가) 7 페이지 / 전적]
한나라 때의 은사(隱士)인 엄자릉이 낚시질하던 여울.
칠만(七巒)[ 1 페이지 / ]
칠곡과 같은 말이다. 어느 곳이 일곡이며 또 전체는 몇 곡(골짜기)까지 있었는지 정확히 밝힐 수 없다. 다만 기대승이 쓴 [면앙정기]를 보면 ‘정자의 동쪽에 제월봉이 꿈틀꿈틀 뻗어 내려오고 서쪽으로는 큰 들이 열려 있다. 이 삼십리 사이에 여섯 골짜기가 보이고 동서남북 수백 리의 거리에 높다란 산이 겹겹이 쌓여 있다‘라는 기록과 같은 곳의 ‘서석산에서 발원된 물줄기는 정자 왼쪽에 제삼곡으로 흐르는데‘의 기록, 임제의[면앙정부]에 ‘용이 서린듯한 일곱 굽이며, 하늘과 구석진 곳일세‘등을 볼때 여기서 말하는 일곱 봉우리는 제일곡에서 제칠곡에 해당될 것 같은데 어느 특정 지역을 두고 그러헤게 불렀느지 밝히기 힘들다.
칠묘[백세보중(百世葆重 三)3 59 페이지 / 전적]
주나라 때 천자의 종묘 곧 태조와 3소, 3목을 말함. 여기서는 종묘사직을 칭함.
칠백동정(七百洞庭)[낙지가 3 페이지 / 전적]
칠백 리에 이르는 동정호.
칠백평호(七百平湖)[상사금실가 3 페이지 / 전적]
동정호(洞庭湖).
칠백평호(七百平湖)[상사금실가 3 페이지 / 전적]
동정호(洞庭湖).
칠보 구족(七寶具足)[권왕가 3 페이지 / 전적]
칠보를 빠짐없이 고루 갖추는 것. 칠보(七寶) : 앞에 든 각주 6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