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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과히[입추가라 4 페이지 / 두루마리]
정도가 지나치게.
과하여[소동가 2 페이지 / 두루마리]
과히 하면. 지나치게 하면.
곽 광(霍光)[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一)1 88 페이지 / 전적]
「霍光」- 漢 平陽人이요 字는 子孟임 昭帝가 卽位할 때 나이가겨우 八歲였으므로 霍光은 大司馬 大將軍으로서 武帝의 遺詔를 받들어 幼主를 보필하였음.
곽거(郭巨)[효행록이라(효록이라) 6 페이지 / 전적]
중국 후한(後漢) 때의 사람으로 효행으로 이름났다.
곽거(郭巨)[삼강오륜자경곡(三綱五倫自警曲) 15 페이지 / 전적]
중국 후한 때에 효성이 지극했던 24효 중의 한 사람. 원전의 ‘곽광(郭匡)’은 곽거(郭巨)의 오식임.
곽거(郭巨)[자경별곡 8 페이지 / 전적]
중국 후한 때에 효성이 지극했던 24효 중의 한 사람. 가사의 원문에서 “師巨”라 한 표기는 ‘郭巨’의 오기임
곽거(郭巨)[ 1 페이지 / ]
중국 후한 때에 효성이 지극했던 24효 중의 한 사람.
곽거(郭巨)[장연변씨세적(長淵邉氏世蹟) 84 페이지 / 전적]
중국 후한 때에 효성이 지극했던 24효 중의 한 사람.
곽거(郭巨)[오륜가라 10 페이지 / 전적]
중국 후한(後漢) 때의 사람. 집이 가난하여 노모(老母)가 굶주리는 것을 보고, 이를 면하게 하기 위하여 자식을 묻고자 땅을 파다가 황금 솥을 얻었다고 한다.
곽거(郭巨)의 위모매아(爲母埋兒) 고사[효성가라 3 페이지 / 전적]
곽거는 한(漢) 나라 사람으로 집이 몹시 가난했음에도 모친을 극진히 공양했는데, 그의 모친이 어린 손자를 사랑하여 부족한 음식을 나누어 먹이자 모친의 건강이 염려된 곽거와 그 부인이 아들을 땅에 파묻기로 하고 땅을 파자 그곳에서 황금이 나왔다고 함.
곽광(霍光)[초씨션원쳥음가 7 페이지 / 전적]
전한(前漢)의 정치가. 무제 사후 소제를 보필, 정사를 집행함. 소제의 형인 연왕 단의 반란을 기회로 상관걸 등 정적을 타도, 실권을 장악함. 소제 사후 창읍왕의 제위를 박탈하고, 선제를 즉위하게 함.
곽광(霍光)[녁대가(녁가) 45 페이지 / 전적]
한나라의 명신(名臣). 금일제(金日磾)와 함께 무제(武帝)의 유지를 받들어 소제(昭帝)를 보필하였음. 이 시기에 백성들의 생활은 넉넉하고 사방의 오랑캐들이 모두 복속하였다고 함.
곽망우당(忘憂堂)[한흥가라 64 페이지 / 전적]
곽재우(郭再祐). 조선 중기의 의병장(1552~1617).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 임진왜란 때 의령(宜寧)에서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고, 정유재란 때 다시 의병장으로 출전하였다. 그 뒤 진주 목사, 함경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곽망우당(忘憂堂)[한흥가라 64 페이지 / 전적]
곽재우(郭再祐). 조선 중기의 의병장(1552~1617).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 임진왜란 때 의령(宜寧)에서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고, 정유재란 때 다시 의병장으로 출전하였다. 그 뒤 진주 목사, 함경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곽망우당(忘憂堂)[한흥가라 64 페이지 / 전적]
곽재우(郭再祐). 조선 중기의 의병장(1552~1617).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 임진왜란 때 의령(宜寧)에서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고, 정유재란 때 다시 의병장으로 출전하였다. 그 뒤 진주 목사, 함경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곽망우당(郭忘憂堂)[한양가라 63 페이지 / 전적]
조선 전기의 의병장 곽재우(郭再祐, 1552-1617). 임진왜란 때 의령(宜寧)에서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고, 정유재란 때 다시 의병장으로 출전하였다.
곽분양[칠녀가 12 페이지 / 두루마리]
곽자의(郭子儀, 697~781). 중국 당(唐)나라 현종, 숙종(肅宗) 때의 정치가. 시호(諡號)는 충무(忠武). 삭방절도사(朔方節度使)로 있을 때 안사(安史)의 난(亂)을 평정하고 대국공(代國公)에 봉해졌다가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짐. 성격이 관후(寬厚)하고 말년(末年)을 화원(花園)에서 즐긴 다복(多福)한 사람. 부귀공명(富貴功名)을 구비한 팔자 좋은 사람.
곽분양[고분가 16 페이지 / 전적]
곽분양은 중국 당나라 때의 무장으로 본명은 곽자의(郭子儀, 697~781)다.당 현종 때 안록산의 난을 토벌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워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지고, 살아생전 온갖 부귀와 공명을 누렸다 전해진다.어떤 사람을 일컬어 ‘곽분양 팔자다’라 하면 그가 곽분양처럼 좋은 팔자를 타고난 사람이란 뜻으로 통한다.
곽분양[고분가 16 페이지 / 전적]
곽분양은 중국 당나라 때의 무장으로 본명은 곽자의(郭子儀, 697~781)다.당 현종 때 안록산의 난을 토벌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워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지고, 살아생전 온갖 부귀와 공명을 누렸다 전해진다.어떤 사람을 일컬어 ‘곽분양 팔자다’라 하면 그가 곽분양처럼 좋은 팔자를 타고난 사람이란 뜻으로 통한다.
곽분양(郭汾陽)[해동졍상국회방연(동졍상국회방연) 5 페이지 / 전적]
분양왕 곽자의(郭子儀, 697~781)를 말함. 중국 당나라의 무장으로 안녹산의 난을 토벌하여 도읍인 장안(長安)을 탈환하였고, 뒤에 토번(吐蕃)을 쳐서 큰 공을 세워 사도(司徒), 중서령(中書令)에 이어 분양왕(汾陽王)으로 봉해졌음. 부귀와 공명을 다 이룬 좋은 팔자를 가졌다 하여 ‘곽분양팔자’라는 말이 생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