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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양호(兩湖)[백세보중(百世葆重 二-一)2-1 9 페이지 / 전적]
전라도(湖南)와 충청도(湖西)를 말함.
양호(兩湖)[문청공유사 사계수필(文淸公遺事 沙溪手筆) 20 페이지 / 전적]
호서(湖西)와 호남(湖南).
양호필(羊毫筆)[타미계라(라미키라) 3 페이지 / 전적]
양털로 촉을 만든 붓.
양호필(羊毫筆)[타미계라(라미키라) 3 페이지 / 전적]
양털로 촉을 만든 붓.
양혹(梁鵠)[가사애부가(가부가) 5 페이지 / 두루마리]
중국 후한에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살았던 서예가.
양홍(楊弘)[녁대가(녁가) 48 페이지 / 전적]
후한 말기 남양 태수 원술(袁術)의 막료로 『삼국지연의』에서는 양대장(陽大將)으로 등장함. 199년, 원술(袁術)이 죽자 장훈(張勳) 등과 함께 손책(孫策)에 의지하다가 그 도상에서 원술의 잔당인 여강태수(廬江太守) 유훈(劉勳)에게 매복 당해 포로가 되었음.
양화[팔역가(八域歌) 48 페이지 / 전적]
마포에 있던 나루, 양천, 강화 방면으로 가는 나루
양화(釀禍)[고분가 19 페이지 / 전적]
재앙이나 화근을 빚어냄.
양화(釀禍)[고분가 19 페이지 / 전적]
재앙이나 화근을 빚어냄.
양화도(楊花渡)[문청공유사 사계수필(文淸公遺事 沙溪手筆) 7 페이지 / 전적]
서울 마포 서남쪽 잠두봉 아래에 있던 조선시대의 나루. 삼진(三鎭)의 하나로 양화진영(楊花鎭營)이 있었으며, 양천에서 강화로 이어지는 중요한 나루터였다.
양황(梁皇)[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三)3 123 페이지 / 전적]
「梁皇餓臺城」―梁武帝 蕭衍은 佛敎를 崇信하여 同泰寺에서 三度를 捨身하였으며、侯景이 來降하자 받아들이고、魏가 와서 求成하자、또 許했다。侯景이 叛하여 臺城을 攻陷하니 武帝는 마침내 餓死하였음。
양회지[숙덕부인도덕가 3 페이지 / 두루마리]
왕희지의 오기인 듯함. 왕희지(王羲之)는 중국 진나라 때 서예가. 자는 일소(逸少)이고 해서, 행서, 초서에 특히 능했다는 대서예가.
양훈(良訓)[죄령열친가라(령열친가라) 34 페이지 / 전적]
좋은 교훈(敎訓).
양[ 1 페이지 / ]
㉮ 양자樣姿. 겉으로 나타난 모양이나 모습.㉯ 양자樣子. 얼굴의 생긴 모양.
얘기[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二)2 49 페이지 / 전적]
繾綣」―서로 떨어질 줄 모른다는 말임. 左傳昭公二十五年「繾綣從公」의 구절이 있는데 註에「離散하지 않는다는 뜻이다」라하였음.
얘기하리[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五)5 185 페이지 / 전적]
「鶴姓丁」-遼東人 丁令威의 化鶴의 故事를 인용한 것임
얘기해다오[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二)2 70 페이지 / 전적]
「梗槩」―大略의 뜻임.後漢書杜篤傳에「臣略知梗槩 不敢具陳」이라 했음.
어(魚) 자와 노(魯) 자 분별[삼강오륜자경곡(三綱五倫自警曲) 30 페이지 / 전적]
魚 자와 魯 자를 분별하지 못하는 아주 무식함을 ‘어로불변(魚魯不辨)’이라 함을 참조.
어(魚) 자와 노(魯) 자 분별[ 1 페이지 / ]
魚 자와 魯 자를 분별하지 못하는 아주 무식함을 ‘어로불변(魚魯 不辨)’이라 함을 참조.
어(魚) 자와 노(魯) 자 분별[장연변씨세적(長淵邉氏世蹟) 90 페이지 / 전적]
魚 자와 魯 자를 분별하지 못하는 아주 무식함을 ‘어로불변(魚魯 不辨)’이라 함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