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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왈작여[셕별가 6 페이지 / 두루마리]
발작(發作)하여. 갑작스럽게.
왈칵달칵[회초가 5 페이지 / 두루마리]
‘왈카닥달카닥’의 준말. 단단한 물건들이 자꾸 서로 매우 거칠게 닿거나 부딪치는 소리.
왈패[쳑사대희승부가(쳑사희승부가) 6 페이지 / 두루마리]
말과 행동이 단정하지 못하고 수선스런 사람의 별명.
왓삭벗석[동상가 3 페이지 / 두루마리]
와삭버석. 마른 가랑잎이나 얇고 빳빳한 물건이 부스러지거나 서로 스치는 소리. 또는 그 모양.
왕[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二)2 62 페이지 / 전적]
「王子猷」―王徽之는 晋 會稽人이요 羲之의 子요 字는 子猷인데 卓犖不覊하였다. 처음에 桓溫의 參軍이 되어 蓬首散帶로 府의 일도 돌보지 않았으며 竹을 사랑하여 癖을 이뤘다. 항상 하는 말이「하루라도 此君이 없어서는 아니된다」(不可一日無此君)라 했다. 그리고 竹을 보면 主人에게 묻지도 않고 곧장 竹所로 가서 竟日嘯傲하고 말없이 가곤하였다. 벼슬이 黃門侍郞에 이르렀음.
왕[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三)3 118 페이지 / 전적]
「王半山」―宋 臨川人인데 이름은 安石、字는 介甫、半山은 號이다。議論이 高奇하고 詩文이 險峭하며 進士에 登第하여 神宗朝에 相이 되어 荊國公을 받았다。政治改革에 立意하여 農田의 水利、均輸、靑苗、保甲、募役、市易、保馬、方田均稅의諸新法을 만들어 先後로 頒行하며 過急히 成效를 求했으나、非人을 任用하여 뜻대로 되지 못하고 弊端만 百出하자、마침내 補外를 自願하여 나가 卒했음
왕 교(王喬)[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五)5 150 페이지 / 전적]
「駕想喬」―喬는 王子喬인데 바로 周靈王의 太子 晋이다. 浮丘生의 接引을 받아 嵩山에 올랐다가 뒤에 自鶴을 타고 緱氏山頭에 와서 손을 들어 時人에게 謝하고 數日만에 떠났다 하였음 列仙傳에 나타나 있음.
왕 맹(王猛)[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二)2 35 페이지 / 전적]
「捫蝨」 ― 晋書 王猛傳에 「桓溫入關 猛被褐而詣之 一面 談當世之事 捫蝨而言 旁若無人」이라하였음. 이를 만진다는 것은 從容不迫하여 두려워하거나 꺼리는바 없다는 뜻임.
왕 역양(王歷陽)[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五)5 27 페이지 / 전적]
「李居士, 王歷陽」-靑蓮居士 李白이「王歷陽이 술마시길 즐겨하지 않음을 조롱하다」(嘲王歷陽不肯飮酒)의 시가 있는데 「地白風色寒 雪花大如手 笑殺陶淵明 不肯盃中酒」라 하였음. 李白은 王歷陽을 陶淵明에게 比하여 썼는데 선생은 이 故事를 빌려 叔氏를 戱遨한 것임.
왕 원지(王元之)[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六)6 27 페이지 / 전적]
「王元之」-이름은 禹偁인데 濟州人이요 宋朝에 進士로 官은 知制誥에 일르렀다。七歲에 能히 詩를 지으니 畢士安이 크게 기특히 여기어 하루는 太守의 席上에서「鸚鵡能言難似鳳」이라는 詩句를 出題하고 元之에게 對를 맞추라 했더니 元之는 卽席에서 蜘蛛雖巧不如蠶」이라 했다。畢公은 탄복하며 「經綸의 才」라 일컷고 드디어 加冠하여 小友라 불렀다。
왕 제(王濟)[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五)5 158 페이지 / 전적]
「王濟」―晋人 王渾의 子인데 字는 武子요 젊어서부터 逸才로 이름났으며 風姿가 英爽하고 易 및 老莊을 좋아하여 一時의 秀彦이 되었다. 하루는 父渾이 앉았는데 濟가 趍庭하여 지나가니 渾은 흐뭇이 여기며「生子如 此足慰人心」이라 하였음.
왕 조(王趙)[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五)5 156 페이지 / 전적]
「王趙」―名筆家인 晋 王
왕(旺)하던가[개명공산가(開明共産歌) 31 페이지 / 전적]
왕성하던가.
왕(旺)하던가[개명공산가(開明共産歌) 31 페이지 / 전적]
왕성하던가.
왕(王)[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一)1 106 페이지 / 전적]
「王與郞」- 未詳함.
왕가세록(王家世錄)[오윤가 18 페이지 / 전적]
왕가의 역사 기록.
왕개보(王介甫)[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四)4 151 페이지 / 전적]
「介甫能言」-王安石의 字는 介甫 號는 半山이요. 宋 臨川人인데 神宗朝에 정승이 되고 荊國公으로 封을 받았다.
왕검성(王儉城)[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5 페이지 / 전적]
고조선의 도읍지.
왕견(王繭)[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七)7 122 페이지 / 전적]
王繭의 繭은 爾字의 誤임. 淮南子 本經에 「王爾公輸 無所錯其剞劂
왕경[백세보중(百世葆重 三)3 46 페이지 / 전적]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