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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종묘(宗廟)[이화가젼 14 페이지 / 전적]
조선 시대에,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 태조 3년(1394)에 착공하여 정전을 짓고 세종 3년(1421)에 영녕전을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타 버리고 광해군 즉위년(1608)에 다시 세운 것이 지금 종로 3가에 남아 있음.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음.
종묘(宗廟)[한흥가라 54 페이지 / 전적]
조선 시대에,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
종묘(宗廟)[한흥가라 54 페이지 / 전적]
조선 시대에,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
종묘(宗廟)[한흥가라 54 페이지 / 전적]
조선 시대에,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
종묘(宗廟)[한양가라 53 페이지 / 전적]
조선시대에,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으로 세종 3년(1421)에 영녕전을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 41년(1608)에 다시 세웠다.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국보 227호.
종묘(宗廟)[시절가 7 페이지 / 전적]
조선 시대에,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 왕실을 뜻함.
종묘(宗廟)[지효가(知孝歌) 3 페이지 / 전적]
조선 시대에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
종묘(宗廟)[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33 페이지 / 전적]
조선(朝鮮) 시대(時代)에, 역대(歷代) 임금과 왕비(王妃)의 위패(位牌)를 모시던 왕실(王室)의 사당(祠堂).
종묘(宗廟)가 아름답고 백관(百官)이 풍부하니 누가 성인의 문에 들어가기 어렵다 의심할 것[고봉선생문집 권이(高峰先生文集 券二) 15 페이지 / 전적]
성인의 학문을 통달하여 온갖 진리를 쉽게 깨닫는다는뜻. 숙손무숙(叔孫武叔)이 자공(子貢)이 공자(孔子)보다 훌륭하다고 평하자, 자공은‘이것을 궁궐과 담장에 비유하면 나의 담장은 겨우 어깨에 미칠 정도여서 그 안에 있는 집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나, 부자(夫子)의 담장은 몇 길이나 되어서 그 문을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의 풍부함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하였다.《論語 子張》
종묘사직(宗廟社稷)[신정도덕가 4 페이지 / 전적]
종묘는 군주의 선조를 모신 사당. 사직은 백성의 복을 위해 제사하는 국토의 신(神)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
종묘사직(宗廟社稷)[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33 페이지 / 전적]
왕실과 나라를 통틀어 이르는 말.
종묘제사(宗廟祭祀)[한양가라 31 페이지 / 전적]
역대 제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종묘에 지내는 제사.
종문[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二)2 150 페이지 / 전적]
「宗文」― 杜甫의 長子임.杜甫는 宗文, 宗武 二子를 두었음
종물[용문가라 4 페이지 / 두루마리]
종물(從物). 어떤 일을 할 때 필요한 물품. 여기서는 놀이에 필요한 재물이나 물건.
종반(宗班)[종매가 1 페이지 / 두루마리]
우리 가문.
종반(宗班)[리행소챙가 83 페이지 / 전적]
성씨가 같은 겨레붙이.
종반(宗班)[자탄가 자탄이라 4 페이지 / 두루마리]
종성(宗姓)과 같은 말로 문중이라는 뜻.
종반(宗班)[긔수가 3 페이지 / 두루마리]
임금의 본종(本宗)이 되는 겨레붙이.
종반(宗班)[신힁가라 2 페이지 / 전적]
임금의 본종(本宗)이 되는 겨레붙이.
종반(宗班)[신힁가라 20 페이지 / 전적]
집안사람. 겨레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