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군청 : (57339)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군 담양읍 추성로 1371 / 대표전화 : 061-380-3114
한국가사문학관: (57392)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877 / 대표전화 : 061-380-2700 팩스 : 061-380-3556
Copyright by Damyang-Gun. All Right Reserved.
홈 > 한국가사문학DB > 가사
용례풀이
이계진[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三)3 81 페이지 / 전적]
「李季眞」―이름은 後白、 字는 季眞이요 號는 靑蓮인데 延安人으로 觀察使淑珹의 曾孫이다、 二十七歲에 司馬에 合格하고 三十六歲에 登第하여 淸職、顯職을 歷任하였으며、正色立朝하여 壁立干仭의 氣象이 있었다。吏曺判書 兩舘提學을 다 지내고 戊寅에 卒하니 謚를 文淸이라 내렸음。
이고득락(離苦得樂)[자책가(가) 19 페이지 / 전적]
번뇌나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는 것.
이곡(二曲)[자경별곡 10 페이지 / 전적]
노래의 제2곡이라는 뜻으로, 이는 가사의 원문에서 첫째 행의 다음에 제시되어 있으나, 이곳 ‘현대역’에서는 이를 바로잡아 맨 앞에 내세운다. 앞의 해제에서 지적한 본 가사의 이본에 의하면 내용상 ‘제2곡 군신유의(君臣有義)’에 해당한 부분이다
이곳에 와서 무성의 닭만 베었네.[석천집(石川集二-二)2-2 138 페이지 / 전적]
공자가 (제자인 자유가 수령으로 있는) 무성에 갔다가 거문고를 타며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공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닭을 잡는데 어찌 소잡는 칼을 쓰겠느냐?‘ 자유가 말했다. ‘전에 제가 선생님께 들이니, ‘관리가 배우면 인의의 마음이 있게 되고, 백성들이 배 우면 부리기가 쉽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공자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언(偃)의 말이 맞다. 내가 방금 한 말은 농담이었다.‘ -<<논어>> <양화>
이공부[춘몽가(츈몽가) 11 페이지 / 전적]
족제비의 꼬리털로 맨 붓.
이공부[춘몽가(츈몽가) 11 페이지 / 전적]
이백(李白)을 지칭.
이과(已過)[권왕가 50 페이지 / 전적]
이미 지나감.
이관(莅官)[지효가(知孝歌) 8 페이지 / 전적]
벼슬에 임하다.
이괄(李适)[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30 페이지 / 전적]
조선 인조 때의 무신ㆍ반란자(1587~1624). 자는 백규(白圭). 인조반정에 공을 세웠는데, 김류와 반목하여 평안 병사(兵使)로 좌천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인조 2년(1624)에 서울로 쳐들어와 흥안군(興安君)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였으나, 불과 하루 만에 관군에게 패하여 도망치다가 부하에게 피살되었다.
이광[팔역가(八域歌) 41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 문신
이광리(李廣利[백발가 5 페이지 / 전적]
한 무제 때의 장수.
이광좌(李光佐)[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41 페이지 / 전적]
조선 후기의 대신(1674~1740). 자는 상보(尙輔). 호는 운곡(雲谷). 소론으로, 경종 3년(1723)에 우의정, 영조 원년(1725)에 영의정에 올랐다가 노론의 등장으로 파직되었다. 영조 3년 정미환국으로 다시 영의정에 올랐다. 저서에 ≪운곡실기≫가 있다.
이교(吏校)[거창가라 22 페이지 / 전적]
조선 시대에, 서리와 장교를 통틀어 이르던 말.중인 신분으로 양반과 양민의 중간을 차지하였다.
이교(吏校)[아림가(娥林歌) 23 페이지 / 전적]
조선 시대에, 서리와 장교를 통틀어 이르던 말. 중인 신분으로 양반과 양민의 중간을 차지하였다.
이교후생(以敎後生)[경화가(警和歌) 8 페이지 / 전적]
나중에 태어나는 사람들을 가르킴.
이교후생(以敎後生)[개명공산가(開明共産歌) 23 페이지 / 전적]
그것으로써 후생(後生)들을 가르침.
이교후생(以敎後生)[개명공산가(開明共産歌) 28 페이지 / 전적]
그것으로써 후생(後生)들을 가르침.
이교후생(以敎後生)[개명공산가(開明共産歌) 34 페이지 / 전적]
그것으로써 후생(後生)들을 가르침.
이교후생(以敎後生)[경화가(警和歌) 8 페이지 / 전적]
나중에 태어나는 사람들을 가르킴.
이교후생(以敎後生)[개명공산가(開明共産歌) 23 페이지 / 전적]
그것으로써 후생(後生)들을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