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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지(東京誌)[가사애부가(가부가) 2 페이지 / 두루마리]

『동경잡기(東京雜記)』.1845년(헌종 11) 경주부윤 성원묵(成原默)이 증보·간행한 경주의 지지.3권 3책.목판본.동경은 고려 때 경주의 이름.작자 미상으로 전해오던 『동경지(東京誌)』를 1669년(현종 10) 부윤 민주면(閔周冕)이 진사 이채(李採) 등과 함께 증수하여 『동경잡기(東京雜記)』라고 이름 붙여 간행하였음.이 책은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의 현존하는 최고의 개별 읍지로서 19세기 경주의 지역 사정과 함께 신라의 전설·역사·풍속·문물 등을 매우

동계(桐溪)[아림가(娥林歌) 36 페이지 / 전적]

정온(鄭蘊). 조선 중기의 문신(1569~1641).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ㆍ고고자(鼓鼓子). 부제학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척화(斥和)를 주장하였으며, 이듬해 화의가 성립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저서에 '덕변록(德辨錄)', '동계집' 따위가 있다.

동계선생(桐溪先生)[팔도안희가 9 페이지 / 전적]

동계 정온(桐溪 鄭蘊, 1569-1641)을 말한다.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휘원(輝遠),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이조참판으로서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척화(斥和)를 주장하다가 화의가 이루어지자 사직하고 덕유산에 들어가 은거하다가 죽었다.

동계선생(桐溪先生)[대명복수가(大明復讎歌) 10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 문신 정온(鄭蘊). 병자호란 때 이조참판으로서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척화(斥和)를 주장하다가 화의가 이루어지자 사직하고 덕유산에 들어가 은거하다가 5년 만에 죽음.

동계선생(桐溪先生)[대명복수가(大明復讎歌) 10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 문신 정온(鄭蘊). 병자호란 때 이조참판으로서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척화(斥和)를 주장하다가 화의가 이루어지자 사직하고 덕유산에 들어가 은거하다가 5년 만에 죽음.

동계선생(桐溪先生)[대명복수가(大明復讎歌) 10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 문신 정온(鄭蘊). 병자호란 때 이조참판으로서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척화(斥和)를 주장하다가 화의가 이루어지자 사직하고 덕유산에 들어가 은거하다가 5년 만에 죽음.

동계선생(桐溪先生)[대명복수가(명복수가) 3 페이지 / 두루마리]

조선 중기 문신 정온(鄭蘊). 병자호란 때 이조참판으로서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척화(斥和)를 주장하다가 화의가 이루어지자 사직하고 덕유산에 들어가 은거하다가 5년 만에 죽음.

동계선생(桐溪先生)[대명복수가(명복수가) 3 페이지 / 두루마리]

조선 중기 문신 정온(鄭蘊). 병자호란 때 이조참판으로서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척화(斥和)를 주장하다가 화의가 이루어지자 사직하고 덕유산에 들어가 은거하다가 5년 만에 죽음.

동고(東皐)[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12 페이지 / 전적]

이준경(李浚慶). 조선 중기 중종, 명종, 선조 때의 문신. 우·좌·영의정 등을 지냈다. 선조 즉위 후 원상(院相)을 지냈다. 사화로 억울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서용 또는 신원하였다. 죽을 때 붕당이 있을 것을 예언한 내용의 유소를 올려 규탄 받았으나, 뒤에 동서분당이 실제 일어나 예언이 적중했다. 저서는《동고유고》,《조선풍속》 등이다.

동고낙지(同苦樂之)[이별가라 3 페이지 / 두루마리]

고락을 같이 하는 것. 동고동락(同苦同樂).동고동락(同苦同樂) : 괴로움도 즐거움도 함께 함.

동고락(同苦樂)[뎡슝샹회방가 2 페이지 / 두루마리]

같이 고생(苦生)하고 즐김.

동곳[한별곡 1 페이지 / 두루마리]

상투를 튼 뒤에 풀어지지 않게 꽂는 물건

동곳[옥단춘전이라 38 페이지 / 전적]

상투를 튼 뒤에 그것이 다시 풀어지지 아니하도록 꽂는 물건. 금ㆍ은ㆍ옥ㆍ산호ㆍ밀화ㆍ나무 따위로 만드는데, 대가리가 반구형이고 끝은 뾰족하여 굽은 것과 굽지 않은 것, 또는 말뚝같이 생긴 것 따위가 있음.

동공일체(同功一體)[명륜가(明倫歌) 80 페이지 / 전적]

‘일의 공효(功效)가 서로 같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형제가 함께 함’을 뜻함.

동공일체(同功一體)[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81 페이지 / 전적]

같은 공로를 세워 같은 지위에 있음.

동과(同科)[이십사룡입수(二十四龍入首) 10 페이지 / 전적]

부자 형제가 같이 과거에 오르다.

동과가(諌過歌)[광애가(廣愛歌) 7 페이지 / 전적]

허물을 말하는 노래.

동과가(諌過歌)[동과가(諌過歌) 1 페이지 / 전적]

허물을 말하는 노래.

동곽의 신발을[석천집(石川集二-二)2-2 203 페이지 / 전적]

(동곽선생은) 다 해진 옷을 입고 다녔고, 신도 제대로 된 것을 신지 못하였다. 그는 눈 위를 다닐 때에 위의 껍질만 있고 바닥은 없는 신을 신어서, 맨발로 땅을 밟고 다녔다. -<<사기>> 제126 <골계열전>

동관(東觀)[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七)7 105 페이지 / 전적]

漢時에 設置한 宮中의 ∝書處임. 安帝가 五經博士에게 詔하여 東觀五經博子傳記 및 百家∝術을 校定하게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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