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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강개(慷慨)[용문가라 3 페이지 / 전적]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의기가 북받쳐 원통하고 슬픔.
강개(慷慨)[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33 페이지 / 전적]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의기가 북받쳐 원통하고 슬픔.
강경(疆境)[대동가(동가) 2 페이지 / 두루마리]
강계(疆界).
강경촌[팔역가(八域歌) 43 페이지 / 전적]
충남 논산군 강경면
강계[팔역가(八域歌) 10 페이지 / 전적]
평안북도 북동부 지명
강과 바다 맛진[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四)4 150 페이지 / 전적]
「兼味」-食品의 二種 이상을 말함. 北史長孫道生傳에 身爲三司 而衣不華餙 食不兼味」라 하였고 또 杜甫詩에 盤䬸市遠無兼味」의 句가 있음.
강굉(姜肱) 동금 동침(同衾同寢)[ 1 페이지 / ]
중국 후한(後漢) 때의 광척(廣戚) 사람. 중해(仲海)와 계강(季江)의 두 아우와 같이 효행을 다하여 유명하였음. 이부자리를 같이함. 여기서는 강굉공피(姜肱共被)의 고사를 두고 이름. 강굉은 중해와 계강의 두 아우와 같이 계모를 섬기는 데에 극진히 하였는데, 잠을 잘 때는 형제가 이부자리를 같이하여 어머니의 마음을 편안케 하였다 함.
강굉(姜肱) 동금 동침(同衾同寢)[장연변씨세적(長淵邉氏世蹟) 88 페이지 / 전적]
중국 후한(後漢) 때의 광척(廣戚) 사람. 중해(仲海)와 계강(季江)의 두 아우와 같이 효행을 다하여 유명하였음. 이부자리를 같이함. 여기서는 강굉공피(姜肱共被)의 고사를 두고 이름. 강굉은 중해와 계강의 두 아우와 같이 계모를 섬기는 데에 극진히 하였는데, 잠을 잘 때는 형제가 이부자리를 같이하여 어머니의 마음을 편안케 하였다 함.
강구(康衢)[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一)1 122 페이지 / 전적]
「康衢」-大路를 말함. 列子에 『堯임금이 天下를 다스린 五十年에 天下가 다스려졌는지 안 다스려졌는지 몰라서 마침내 微服 차림으로 康衢에 노닐매 兒童들의 노래를 들어보니 그 노래에 立我蒸民 莫非爾極 不識不知 順帝之則』이라 하였음.
강구(康衢)[옥셜화답 10 페이지 / 전적]
사방팔방으로 두루 통한 길.
강구(康衢)[조심가라 7 페이지 / 전적]
사방으로 두루 통하는 번화한 큰 길거리.
강구(康衢)[조심가라 7 페이지 / 전적]
사방으로 두루 통하는 번화한 큰 길거리.
강구(康衢)[거창가라 9 페이지 / 전적]
사방으로 두루 통하는 번화한 큰 길거리.
강구(康衢)[아림가(娥林歌) 9 페이지 / 전적]
사방으로 두루 통하는 번화한 큰 길거리.
강구(康衢)[녁대가(녁가) 11 페이지 / 전적]
사방으로 두루 통하는 번화한 큰 길거리.
강구(康衢)에 격양(擊壤)하여[녁대가(녁가) 11 페이지 / 전적]
요(堯)임금이 자기의 정치가 어떠한가를 알아보기 위해 저자거리에 나갔다가, 임금의 존재조차도 모를 정도로 태평스런 삶을 살고 있다는 노래를 들었다는 고사(故事)를 말함. 그 노래를 격양가(擊壤歌)라고 함.
강구(康구)에 격앙가(擊壤歌)는 제요(帝堯)에 성덕(聖德)이요[자탄가 자탄이라 1 페이지 / 두루마리]
중국의 요임금 때 아이들이 길가에서 태평성대를 구가하게 해 준 요임금의 덕을 칭송하면서 부르던 동요인 강구요(康衢謠)- “우리 백성 살리심에/ 그대의 덕 아님이 없네/ 느끼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당신의 다스림에 따르고 있네 와 백발노인이 함포고복(含哺鼓腹)하면서 태평한 세월을 노래하던 태평가인 격양가(擊壤歌)-해뜨면 일하고/ 해지면 들어와 쉬네/ 우물을 파서 마시고/밭갈아서 먹으니/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랴”
강구(江口)[선유가라 12 페이지 / 전적]
나루.
강구격양(康衢擊讓)[충효가 3 페이지 / 전적]
태평한 세월을 노래함.
강구동자(康衢童子)[신정도덕가 3 페이지 / 전적]
골목길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