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군청 : (57339)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추성로 1371 / 대표전화 : 061-380-3114
한국가사문학관: (57392)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877 / 대표전화 : 061-380-2700 팩스 : 061-380-3556
Copyright by Damyang-Gun. All Right Reserved.
홈 > 한국가사문학DB > 가사
용례풀이
낭풍잠(閬風岑)[송강집(松江集二)2 90 페이지 / 전적]
신선이 사는 산 이름. 이소경(離騷經)에 「登閬風而○馬」
낮은 벼슬은 높은 벼슬에 맞서 반항할 수 없음[삼강오륜가 서 5 페이지 / 전적]
비불가이항존(卑不可以抗尊).
낮이면 앉아볼까[사친가2(思親歌(二)) 5 페이지 / 전적]
낮이면 일이 바빠 잠시도 쉬어볼 틈이 없음을 이르는 말. 장등(長燈) : 밤새도록 등불을 켜두는 것.
낯[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五)5 116 페이지 / 전적]
「吹面風」― 宋의 理學者 邵雍詩에 「梧桐月向懷中照 楊柳風來面上吹」라는 句가 있음
낯바대기[나부가 3 페이지 / 두루마리]
‘낯(얼굴)’을 속되게 이르는 말.
낱[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四)4 47 페이지 / 전적]
「韋布」-韋帶布衣의 略稱인데 寒素의 服을 이름. 晋書阮籍傳에『夫韋帶布衣之士 孤居特立』이라 하였음.
낳고[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一)1 120 페이지 / 전적]
「生生」- 易 繫辭에「生生之謂物」이라 하고 本義에「陰生陽 陽生陰 其變無窮」이라 하였음.
낳아서 길러주셨으니[삼강오륜가 서 7 페이지 / 전적]
생이육지(生而育之).
내[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一)1 93 페이지 / 전적]
「恭」- 申生은 父命에 잘 복종했다 하여 諡를 恭이라 했음.
내[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一)1 129 페이지 / 전적]
「懸幢」- 懸旌과 같은 말인데 心神이 寧靜하지 못함을 이름.國策 楚策에「寡人臥不安席 食不甘味 心搖搖然如懸旌 而無所終薄」이라 하였고, 注에「薄은 泊과 같다」 하였음.
내[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一)1 141 페이지 / 전적]
「歸去來辭」- 晋處士 陶淵明이 彭澤縣令으로 부임하여 官에 있은지 겨우 八十日만에 督郵가 오니 한탄하며 말하기를 「나는五斗米를 위하여 折腰를 하지 못하겠다」하며 印를 끌러 던지고 歸去來辭를 지어 뜻을 보인후에 바로 還鄕하였음.
내[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五)5 153 페이지 / 전적]
「北歐公」―歐公은 歐陽脩를 말함. 歐公의 나이 四十歲에 滁州의 守가 되어 그 山水의 勝을 사랑하여 醉翁亭을 짓고 暇日에 宴游하였음. 公의 詩에「四十未爲老 醉翁偶題篇 醉中遺萬物豈復記吾年」이 보임.
내 나이[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二)2 44 페이지 / 전적]
「三紀」― 十二年이 一紀가 됨. 國語 晋語에「畜力一紀」라 했고그 註에 「十二年이면 歲星이 一周하여 一紀가 된다」라 하였음.
내 요리하는 솜씨를[석천집(石川集二-二)2-2 138 페이지 / 전적]
재상이 나라를 다스리는 솜씨를 가리킨다. 은나라의 어진 재상 이윤(伊尹)이 처음 탕왕을 만날 때에 솥과 도마를 지고 가서 음식요리를 예로 들어 설득했다고 한다.
내(乃)[구궁환정구구가(九宮還定九九歌) 4 페이지 / 전적]
이에
내(來)한[상사금실가 4 페이지 / 전적]
‘내(來)’는 ‘돌아오다’는 의미가 지님. 해마다 나이를 먹는 것을 뜻함.
내(來)한[상사금실가 4 페이지 / 전적]
‘내(來)’는 ‘돌아오다’는 의미가 지님. 해마다 나이를 먹는 것을 뜻함.
내가되고[자탄가 12 페이지 / 두루마리]
냇물이 되고.
내간(內間)[송강집(松江集七)7 21 페이지 / 전적]
내궁(內宮)을 이름.
내공(箂公)[송강집(松江集六)6 25 페이지 / 전적]
당(唐)나라 구준(寇準)이 적소(謫所)로부터 들어옴을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