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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박소리 핑계했던[성산별곡 11 페이지 / 전적]
소리가 난다고 핑계하고 표주박을 던져버린 허유(許由)의 일화를 말함.
박속[갑지녹이라 21 페이지 / 전적]
박 안의 씨가 박혀 있는 하얀 부분.
박속[우미인가라 1 페이지 / 전적]
박 안의 씨가 박혀 있는 하얀 부분.
박순(朴淳)[석천집(石川集二-五)2-5 149 페이지 / 전적]
1523~1589. 호는 사암(思庵), 자는 사숙(私叔), 박우의 아들이다.
박순(朴淳)[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10 페이지 / 전적]
조선 선조 때의 문신(1523~1589). 자는 화숙(和叔). 호는 사암(思庵). 서경덕의 제자로, 명종 8년(1553)에 문과에 장원, 벼슬이 우의정, 영의정에 이르렀다. 율곡과 퇴계를 변론하여 서인으로 지목받고 탄핵당하여 영평(永平) 백운산에 은거하였다. 한당체(漢唐體)의 시를 잘 지었으며, 저서에 ≪사암집≫이 있다.
박순(朴淳,1523-1589)[석천집(石川集二-三)2-3 109 페이지 / 전적]
조선 중종,선조 때의 문신, 학자. 자는 화숙(和叔), 호는 사암(思菴). 서경덕(徐敬德)의 문인. 이조참의,대제학,우의정,좌의정,영의정 등을 지냈다. 동서당쟁(東西黨爭)이 격심할 무렵 이이(李珥),성혼(成渾)을 편들다 서인으로 지목받아 탄핵되어 영평(永平)의 백운산(白雲山)에 은거했다. 시(詩),문(文),서(書)에 모두 뛰어났다.
박순상(朴巡相)[충효가 7 페이지 / 전적]
정조 7년(1789) 당시 전라도감사인 박우원.
박시제중(博施濟衆)[개명공산가(開明共産歌) 23 페이지 / 전적]
은혜를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들을 구제함.
박시제중(博施濟衆)[개명공산가(開明共産歌) 23 페이지 / 전적]
은혜를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들을 구제함.
박식(薄識)[조선충효가 17 페이지 / 두루마리]
아는 바가 없음.
박아지[여자행신가 8 페이지 / 전적]
‘바가지’임. 박을 두 쪽으로 쪼개거나 또는 나무나 플라스틱으로 그와 비슷하게 만들어 물을 푸거나 물건을 담는 데 쓰는 그릇.
박아지[여자행신가 8 페이지 / 전적]
‘바가지’임. 박을 두 쪽으로 쪼개거나 또는 나무나 플라스틱으로 그와 비슷하게 만들어 물을 푸거나 물건을 담는 데 쓰는 그릇.
박애(博愛)[이율곡선생권선가(李栗谷先生勸善歌) 6 페이지 / 전적]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함.
박약(博約)[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一)1 133 페이지 / 전적]
「博約」- 論語 子罕篇에 「博我以文 約之以禮」라 하였음.
박약(博約)[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七)7 112 페이지 / 전적]
博約은 論語 顔淵篇에 「博學於文 約之以禮」라는 대문을 줄여 말한 것이요 操存은 孟子 告子篇에 「孔子曰操則存 舍則亡 出入無常 莫知其鄕 惟心之謂∝」에서 나온 것임.
박약신분(薄弱身分)[후원초당 봄이듯이 4 페이지 / 두루마리]
박약한 신세.
박어부득(迫於不得)[명륜가(明倫歌) 30 페이지 / 전적]
일이 몹시 급하게 닥쳐와서 어쩔 수 없음.
박연(朴堧)[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83 페이지 / 전적]
조선 세종 때의 음악가(1378~1458)로 자는 탄부(坦夫). 호는 난계(蘭溪)이다.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 가운데 한 사람으로, 벼슬은 이조 판서, 대제학에 이르렀다. 악기를 개량하고 음계를 조정하였으며 향악을 버리고 아악을 사용하게 하는 등, 궁중 음악을 정비하여 우리나라 고유 음악의 토대를 튼튼히 하였다.
박연(朴堧)[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50 페이지 / 전적]
조선 세종 때의 음악가(1378~1458). 자는 탄부(坦夫). 호는 난계(蘭溪).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 가운데 한 사람으로, 벼슬은 이조 판서, 대제학에 이르렀다. 악기를 개량하고 음계를 조정하였으며 향악을 버리고 아악을 사용하게 하는 등, 궁중 음악을 정비하여 우리나라 고유 음악의 토대를 튼튼히 하였다.
박엽[팔역가(八域歌) 11 페이지 / 전적]
광해군 때 함경도 병마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