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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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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전(榻前)[남산동이진사효행록(남동이진효횡녹) 12 페이지 / 전적]

왕의 자리 앞.

탕(湯) 임금[역대가라(역가라) 6 페이지 / 전적]

은(殷)나라를 세운 성탕(成湯)임금. 그 시조 설(契)이 상(商)나라에 봉해졌는데, 성탕이 하걸(夏桀)을 물리치고 천하를 얻고 나서 국호를 상(商)이라고 했다가 그후 수도를 여러 번 옮겼다가 반경(盤庚)에 이르러 은(殷)의 옛터로 와서 은(殷)이라고 불렀다.

탕(湯)임금[한양가라 13 페이지 / 전적]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상(商)나라를 세운 임금이다. 상나라는 은(殷)나라와 같다.

탕(蕩)[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69 페이지 / 전적]

중국 은나라의 초대 왕(?~?)으로 박(亳)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상(商)이라 칭하였으며, 제도와 전례(典禮)를 정비하였음.

탕갈(蕩竭)[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17 페이지 / 전적]

재물이 남김없이 다 없어짐.

탕갈(蕩竭)[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21 페이지 / 전적]

재물이 남김없이 다 없어짐. 또는 재물을 다 없앰.

탕갈(蕩竭)[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25 페이지 / 전적]

재물(財物)을 남김 없이 다 써 버림.

탕건(宕巾)[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76 페이지 / 전적]

벼슬아치가 갓 아래 받쳐 쓰던 관(冠)의 하나.

탕건(宕巾)[회경가 16 페이지 / 전적]

벼슬아치가 갓 아래 받쳐 쓰던 관(冠)의 일종

탕건(宕巾)[긔수가 4 페이지 / 두루마리]

벼슬아치가 갓 아래 받쳐 쓰던 관(冠)의 하나. 말총을 잘게 세워서 앞쪽은 낮고 뒤쪽은 높게 턱이 지도록 뜸. 집 안에서는 그대로 쓰고 외출할 때는 그 위에 갓을 씀.

탕건(宕巾)[답긔슈가 8 페이지 / 전적]

벼슬아치가 갓 아래 받쳐 쓰던 관(冠)의 하나. 말총을 잘게 세워서 앞쪽은 낮고 뒤쪽은 높게 턱이 지도록 뜸. 집 안에서는 그대로 쓰고 외출할 때는 그 위에 갓을 씀.

탕건(宕巾)[회조가 2 페이지 / 전적]

벼슬아치가 갓 아래 받쳐 쓰던 관(冠)의 하나. 말총을 잘게 세워서 앞쪽은 낮고 뒤쪽은 높게 턱이 지도록 뜸. 집 안에서는 그대로 쓰고 외출할 때는 그 위에 갓을 씀.

탕관(湯罐)[효열전니라(孝烈傳니라) 8 페이지 / 전적]

국을 끓이거나 약을 달이는 자그마한 그릇.

탕관(湯罐)[김씨효행가 8 페이지 / 두루마리]

국을 끓이거나 약을 달이는 자그마한 그릇. 쇠붙이나 오지 따위로 만들며 흔히 손잡이가 달려 있음.

탕목궁(湯沐宮)[한양가라 10 페이지 / 전적]

태조가 함흥에 지낼 때 지은 건물 이름.

탕무(湯武)[거창가 4 페이지 / 전적]

은(殷)나라의 탕왕(湯王)과 주(周)나라의 무왕(武王). 모두 자기가 섬기던 임금을 방벌(放伐)하여 나라를 얻은 임금들임.

탕무(湯武)[거창가 4 페이지 / 전적]

은(殷)나라의 탕왕(湯王)과 주(周)나라의 무왕(武王). 모두 자기가 섬기던 임금을 방벌(放伐)하여 나라를 얻은 임금들임.

탕무(湯武)[거창가라 10 페이지 / 전적]

은(殷)나라의 탕왕(湯王)과 주(周)나라의 무왕(武王).모두 자기가 섬기던 임금을 방벌하여 나라를 얻었음.

탕무(湯武)[아림가(娥林歌) 11 페이지 / 전적]

은(殷)나라의 탕왕(湯王)과 주(周)나라의 무왕(武王). 모두 자기가 섬기던 임금을 방벌하여 나라를 얻었음.

탕무휴치(湯武休治 )[낙지가 4 페이지 / 전적]

당왕과 무왕이 인의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그치게 됨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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