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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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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最重)[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19 페이지 / 전적]

가장 귀하고 중요함.

최질(衰絰)[송강집(松江集二)2 169 페이지 / 전적]

최(衰)는 상복, 질(絰)은 수요질(首腰絰).

최찬(璀璨)[셔유곡 4 페이지 / 전적]

빛이 번쩍거려서 찬란함.

최첨지[은삭가 7 페이지 / 전적]

조선시대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중추원에 속한 정삼품 무관의 벼슬. 여기에 서는 나이 많은 남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

최첨지[은삭가 7 페이지 / 전적]

조선시대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중추원에 속한 정삼품 무관의 벼슬. 여기에 서는 나이 많은 남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

최최(崔崔)[대동가(동가) 2 페이지 / 두루마리]

산이 우뚝하게 섬.

최충(崔沖)[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52 페이지 / 전적]

고려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984~1068)으로 자는 호연(浩然), 호는 성재(惺齋)·월포(月圃)·방회재(放晦齋)이다. 글씨와 문장에 뛰어났으며 해동공자로 추앙되었다. 문집으로

최충헌(崔忠獻)[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56 페이지 / 전적]

고려 시대 무신 정권기의 집권자(1149~1219)로 초명은 난(鸞), 시호는 경성(景成)이다. 1196년에 동생 최충수와 함께 권신 이의민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하였으며 폐정 개혁(弊政改革)을 위한 봉사십조(封事十條)를 왕에게 올렸다. 이듬해 왕의 측근을 몰아낸 후 최씨 무단 정권을 확립하였다.

최치운(崔致雲)[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50 페이지 / 전적]

조선 전기의 문신. 1433년 평안도 절제사 최윤덕의 종사관으로 야인 정벌에 공을 세웠다. 1439년 공조참판 때 계품사로 명나라에 가 야인 회유에 관해 논의하는 등 수차례 사신으로 명나라에 왕래했다.《무원록(無寃錄)》을 주석하고, 율문(律文)을 강해하는 등 형옥(刑獄)에 대한 왕의 자문에 응했다.

최치원(崔致遠)[고령가곡여자들등님곡이라(고령가곡여들등님곡이라) 2 페이지 / 전적]

(857~?) 신라(新羅) 말의 학자이며 문장가로, 자(字)는 孤雲(고운), 海雲(해운). 시호(諡號)는 文昌侯(문창후)임.

최치원(崔致遠)[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46 페이지 / 전적]

통일 신라 말기의 학자·문장가(857~?)로 자는 고운(孤雲)·해운(海雲)이다. 12세에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격문(檄文)을 써서 이름을 높였다. 저서에

최친지친(最親至親) 최친(最親) 지친(至親)[자책가(가) 6 페이지 / 전적]

더할 수 없이 가까운 친척들. 가장 친하여 가까움. 부자간 · 형제간을 이름. 또는 더할 수 없이 친함.

최판(崔判)[회심곡 10 페이지 / 두루마리]

최판관(崔判官)의 약칭. 죽은 사람의 생전의 선악을 판단한다는 저승의 벼슬아치.

최판관(崔判官)[서가여래가사라 7 페이지 / 두루마리]

죽은 사람에 대하여 생존시의 선악(善惡)을 판단한다는 저승의 벼슬아치.

최판관(崔判官)[서가여래가사라 7 페이지 / 두루마리]

죽은 사람에 대하여 생존시의 선악(善惡)을 판단한다는 저승의 벼슬아치.

최판이[용문가라 6 페이지 / 두루마리]

최판(催辦)이다. 일을 잘 처리한다.

최항(崔恒)[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83 페이지 / 전적]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1409~1474)로 자는 정부(貞父), 호는 동량·태허정(太虛亭)이다. 영의정을 지냈다. 훈민정음 창제에 공을 세웠으며 실록 편찬에 참여하고

최항(崔沆)[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59 페이지 / 전적]

고려 시대 무신 정권기의 집권자(?~1257)로 초명은 만전(萬全)이다. 최우의 아들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집권한 후, 무고(誣告)를 믿어 계모 대씨(大氏)를 독살하고 많은 중신을 죽였으며, 몽고에 대하여는 강경 정책을 썼다.

최호(崔湖)[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23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임진왜란 때 이몽학의 난 진압에 공을 세웠고, 칠전해전에서 원균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최활[직금가라 10 페이지 / 전적]

베를 짤 때 폭이 좁아지지 아니하도록 가로나비를 버티는 가는 나무오리. 활처럼 등이 휘고 양 끝에 최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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