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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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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金均)[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61 페이지 / 전적]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군호는 계림군(鷄林君),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360년 성균시에 합격하여 과거를 준비하다가 조준(趙浚)을 알게 되었는데, 이 덕분에 조준이 국정을 맡을 때 여러 번 천거되었고, 전법판서(典法判書)까지 지냈다. 1392년 조준의 설득으로 7월 17일 조선 개국에 참여하여 개국 3등 공신에 책록되고,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에 가자되었다.

김닐은[용문가라 4 페이지 / 두루마리]

금일(今日)은. 오늘은.

김담사(金淡沙) 박담사(朴淡沙)[아림가(娥林歌) 22 페이지 / 전적]

군정(軍政)의 폐단을 빚어내던 가명(假名)과 허록(虛錄)의 예다.

김담사(金淡沙)리 박담사(朴淡沙)[거창가라 22 페이지 / 전적]

군정(軍政)의 폐단을 빚어내던 가명(假名)과 허록(虛錄)의 예다.

김대성(金大城)[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40 페이지 / 전적]

통일 신라 경덕왕 때의 재상(700~774). 경덕왕 10년(751)에 경주 불국사와 석불사(石佛寺)의 건립을 발원(發願)하고 설계, 건축, 조각 따위의 전반에 걸쳐 관여하였다. 그러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어 뒤에 조정에서 완성하였다.

김덕건[화전가1 14 페이지 /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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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건[화전가2 14 페이지 /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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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량(金德良)[안심가 11 페이지 / 전적]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의 오기. 당시 김덕령은 이몽학의 난에 관여하였다는 참소를 받아 옥사하였다.

김덕령[팔역가(八域歌) 39 페이지 / 전적]

조선 무장

김덕령(金德齡)[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13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의병장(1567~1596). 자는 경수(景樹).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병을 크게 무찔러 호익장군(虎翼將軍)의 호를 받았고, 이듬해 의병장 곽재우와 함께 여러 차례 왜병을 격파하였다. 선조 29년(1596)에 무고로 고문을 받고 옥사하였다.

김덕령(金德齡)[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22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의병장(1567~1596). 자는 경수(景樹).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병을 크게 무찔러 호익장군(虎翼將軍)의 호를 받았고, 이듬해 의병장 곽재우와 함께 여러 차례 왜병을 격파하였다. 선조 29년(1596)에 무고로 고문을 받고 옥사하였다.

김덕령(金德齡)[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3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의병장(1567~1596)으로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병을 크게 무찔러 호익장군(虎翼將軍)의 호를 받았고, 이듬해 의병장 곽재우와 함께 여러 차례 왜병을 격파하였으나 선조 29년(1596)에 무고로 고문을 받고 옥사하였음.

김덕성(金德成)[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30 페이지 / 전적]

조선 후기의 화가(1729~1797). 자는 여삼(汝三). 호는 현은(玄隱). 도화서의 화원(畵員)으로 첨절제사를 지냈고, 특히 신장(神將)을 잘 그렸다. 작품에 <뇌공도(雷公圖)>가 있다.

김도연(金度演)[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74 페이지 / 전적]

정치가(1894~1967). 호는 상산(常山). 입법 의원과 제헌 국회 의원을 거쳐 초대 재무부 장관을 지내고, 3ㆍ4ㆍ5대 민의원과 6대 국회 의원을 지냈다. 저서에 ≪나의 인생 백서≫, ≪한국 농촌 경제≫ 따위가 있다.

김동강[팔역가(八域歌) 28 페이지 / 전적]

조선 문인 김우옹

김동거사(金同居士)[금강산유람가 4 페이지 / 두루마리]

금동거사. 나옹선사의 제자로 금강산 표훈사에 머물렀음. 표훈동 입구의 큰 바위 앞면에 나옹선사는 삼불을 새기고, 금동거사는 뒷면에 60개의 작은 좌불상을 새겼음.

김득배(金得培)[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63 페이지 / 전적]

고려 말기의 문신(1312~1363)으로 호는 난계(蘭溪)이다. 1357년과 1359년 홍건적 침입 때 서북면 도순문사가 되어 방어에 힘썼으나, 1363년에 처형되었다.

김락(金樂)[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48 페이지 / 전적]

김낙(金樂, ? ~ 927년)은 고려의 개국공신이다. 927년에 후백제의 견훤과 공산(지금의 대구)에서 싸우다가 포위된 왕건이 위급해지자 신숭겸과 함께 왕건을 구하고 전사하였다. 고려가 개국되자 2등 공신이 되었고, 태조는 지묘사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었다. 예종은 그와 신숭겸을 추도하는 향가 <도이장가>를 지었다.

김류(金瑬)[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29 페이지 / 전적]

> 조선 인조 때의 문신(1571~1648). 자는 관옥(冠玉). 호는 북저(北渚). 인조반정 때에 공을 세워, 정사공신이 되었다. 병자호란 때에는 영의정으로서 최명길 등과 더불어 화의를 주장하여 왕이 항복하게 하였다. 시문에 뛰어났다.

김립(金笠)[권학가 6 페이지 / 전적]

‘김삿갓’을 한자식으로 부르던 이름. 방랑시인(放浪詩人)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이 젊어서 삿갓을 쓰고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해학과 풍자에 넘치는 시를 많이 읊고 다녔기 때문에 속칭되던 이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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