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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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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후(金麟厚 중종 5, 1510~명종 15, 1560)[문청공유사 사계수필(文淸公遺事 沙溪手筆) 4 페이지 / 전적]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 김안국의 제자로 성균관에 들어가 이황과 같이 학문을 닦고 중종 35년(1540)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 부수찬 등을 지냈다. 을사사화 후에는 병을 이유로 고향 장성으로 돌아가 학문에 전념했다. 성경(誠敬)의 실천을 학문의 목표로 삼았으며 이기일물설(理氣一物說)을 주장했다.

김일경(金一鏡)[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41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문신(1662~1724). 자는 인감(人鑑). 호는 아계(丫溪). 소론(少論)의 과격파로서 노론(老論)을 탄압하는 데 앞장서서 신임사화를 일으켜 노론 사대신(老論四大臣)을 극형에 처하고 이조 판서에 올랐으나, 영조가 즉위한 뒤 참형을 당하였다.

김일손(金馹孫)[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03 페이지 / 전적]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인(1464~1498)으로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소미산인(少微山人)이다. 성종 17년(1486)에 문과에 급제하고, 이조 정랑을 지냈다. 춘추관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김자(金子)[석천집(石川集二-五)2-5 100 페이지 / 전적]

김강숙, 즉 김성원의 존칭이다.

김자수(金自粹)[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72 페이지 / 전적]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자는 순중(純中), 호는 상촌(桑村)이다. 대사성·좌상시·형조 판서를 지냈으며, 고려가 망하자 안동에 은거하다가 자결하였다.

김자점(金自點)[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26 페이지 / 전적]

김자점(金自點, 1588~1651)

김장생(金長生)[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30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학자ㆍ문신(1548~1631).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 이이의 제자이자 송시열의 스승으로, 조선 예학(禮學)의 태두이다. 저서에 ≪의례문해≫, ≪근사록석의≫, ≪경서변의(經書辨疑)≫ 등이 있다.

김장자(金長者)[효열전니라(孝烈傳니라) 9 페이지 / 전적]

김씨 성을 가진 장자(長者). 장자란 지체가 높은 어른 또는 부자.

김재로(金在魯)[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42 페이지 / 전적]

조선 후기의 문신(1682~1759). 자는 중례(仲禮). 호는 청사(淸沙)ㆍ허주자(虛舟子). 숙종 36년(1710)에 문과에 급제하고 지평, 수찬을 거쳐 좌의정, 영의정을 지냈다. 노론(老論)의 선봉으로 활약하였으며, 청빈한 재상으로 이름이 높았다.

김저(金佇)[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70 페이지 / 전적]

고려 말기의 무장(?~1389)이다. 최영의 생질로 이성계를 죽이려고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옥사하였다.

김전부(金典簿)[ 1 페이지 / ]

전부는 종친부(宗親府)의 관명으로 한훤당의 직손(直孫)인 김립(金立)을 가리킨다

김전부(金典簿)[고봉선생문집 권삼(高峰先生文集 券三) 164 페이지 / 전적]

전부는 종친부(宗親府)의 관명으로 한훤당의 직손(直孫)인 김립(金立)을 가리킨다

김정국(金正國 1485∼1541)[명륜가(明倫歌) 10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 본관은 의성. 자는 국필(國弼), 호는 사재(思齋). 기묘사화로 삭탈관직되어 고양(高陽)에 내려가 팔여거사(八餘居士)라 칭하고, 학문을 닦으며 저술과 후진교육에 전심하였음.

김정희(金正喜)[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50 페이지 / 전적]

조선 후기의 문신ㆍ서화가(1786~1856). 자는 원춘(元春). 호는 완당(阮堂)ㆍ추사(秋史)ㆍ시암(詩庵)ㆍ예당(禮堂)ㆍ노과(老果)ㆍ농장인(農丈人)ㆍ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순조 19년(1819)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이조 참판에 이르렀다. 학문 연구에 대해서는 실사구시를 주장하였고, 서예에서는 추사체를 완성하였다. 고증학, 금석학에도 밝아 북한산에 있던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하였다. 작품에 <묵죽도(墨竹圖)>, <묵란도(墨蘭圖)>, <세한도(歲寒

김제(金堤)[호남가(湖南歌) 4 페이지 / 전적]

전라북도 서쪽 끝에 위치한 한 군으로 김제는 본래 백제의 벽골군이었는데, 신라 때 김제(金堤)로 바뀌었고, 1914년에는 금구(金溝)와 만경(萬頃)을 합쳤다.

김제(金堤)[호남가라 3 페이지 / 전적]

전라북도 중서부에 위치한 시.

김제남(金悌男)[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27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문신(1562~1613). 자는 공언(恭彦). 선조의 장인으로 돈령부 영사를 제수받고 연흥 부원군으로 봉해졌다. 광해군 때에 영창 대군을 추대한다는 무고를 받고 사사(賜死)되었다.

김조순(金祖淳)[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46 페이지 / 전적]

조선 후기의 문신(1765~1832). 초명은 낙순(洛淳). 자는 사원(士源). 호는 풍고(楓皐). 순조의 장인으로서, 대제학을 지냈으며, 안동 김씨 세도 정치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죽화(竹畫)를 잘 그렸다. 저서에 ≪풍고집≫이 있다.

김조순(金祖淳)[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46 페이지 / 전적]

조선 후기의 문신(1765~1832). 순조의 장인으로 대제학을 지냈으며,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기반을 마련하였음.

김종서(金宗瑞)[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83 페이지 / 전적]

조선 전기의 충신(1390~1453)으로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절재(節齋)이다. 태종 5년(1405)에 문과에 급제하고, 함길도 절제사를 거쳐 우의정을 지냈다. 육진(六鎭)을 개척하여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을 확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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