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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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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군지고풍(金相君之高風)[옥셜화답 11 페이지 / 전적]

재상인 김 상공(相公)의 고아한 풍류.

김상옥(金尙沃)[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68 페이지 / 전적]

독립운동가(1901~1969). 3ㆍ1 운동 후 만주 천마산(天摩山)을 근거로 독립군을 조직하고 국내에 잠입하여 주재소 등을 습격하였다. 1923년에는 주만 참의부(駐滿參議部) 중대장으로 활약하였다.

김상헌(金尙憲)[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13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문신(1570~1652).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ㆍ석실산인(石室山人)ㆍ서간노인(西磵老人). 대제학, 이조 판서, 예조 판서, 공조 판서, 병조 판서를 지냈다. 저서에 ≪야인담록(野人談錄)≫ㆍ≪풍악문답(豐岳問答)≫ 따위가 있고, ≪청구영언≫ 따위의 가곡집에 시조 4수가 전한다.

김상헌(金尙憲)[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35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문신(1570~1652).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ㆍ석실산인(石室山人)ㆍ서간노인(西磵老人). 대제학, 이조 판서, 예조 판서, 공조 판서, 병조 판서를 지냈다. 저서에 ≪야인담록(野人談錄)≫ㆍ≪풍악문답(豐岳問答)≫ 따위가 있고, ≪청구영언≫ 따위의 가곡집에 시조 4수가 전한다.

김생(金生)[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47 페이지 / 전적]

신라 때의 명필(711~?)로 자는 지서(知瑞)이다. 예서, 행서, 초서에 능하여 해동(海東)의 서성(書聖)이라고 불렸다.

김석문(金錫文)[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49 페이지 / 전적]

조선 시대의 학자(1658~1735). 자는 병여(炳如). 호는 대곡(大谷). 역학에 조예가 깊어 ≪역학도해(易學圖解)≫를 저술하였으며, 숙종 때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통천(通川) 군수를 지냈다.

김선생[백세보중(百世葆重 三)3 14 페이지 / 전적]

조선 인조 때의 상신相臣인 김상용을 지칭. 본이 안동으로 호를 선원, 풍계, 계옹이라 했는데 서울출생이다. 좌의정 상헌의 형이며 좌의정 정유길의 외손으로 임란 때 양호체찰사가 되어 정철의 종사관으로 왜군 토벌과 명나라 군사 접대에 공을 남겼다. 성절사로 명에 다녀왔으며 왕의 측근으로 전란 중의 여러 사무를 보필하였다.

김선원[대명복수가(大明復讎歌) 13 페이지 / 전적]

병자호란 때 선원(仙源) 김상용이 강화도로 침략한 청군에 대항하여 남문루 위에 염초를 쌓아놓고 불을 붙여 순국한 사건.

김선원[대명복수가(大明復讎歌) 13 페이지 / 전적]

병자호란 때 선원(仙源) 김상용이 강화도로 침략한 청군에 대항하여 남문루 위에 염초를 쌓아놓고 불을 붙여 순국한 사건.

김선원[대명복수가(大明復讎歌) 13 페이지 / 전적]

병자호란 때 선원(仙源) 김상용이 강화도로 침략한 청군에 대항하여 남문루 위에 염초를 쌓아놓고 불을 붙여 순국한 사건.

김선원[대명복수가(명복수가) 4 페이지 / 두루마리]

병자호란 때 선원(仙源)

김선원[대명복수가(명복수가) 4 페이지 / 두루마리]

병자호란 때 선원(仙源)

김선원[팔역가(八域歌) 49 페이지 / 전적]

안동인 김상용, 선원은 호

김선원(金仙源)[한흥가라 65 페이지 / 전적]

김상용(金尙容, 1561~1637). 본관 안동. 자 경택(景擇). 호 선원(仙源) ·풍계(楓溪). 시호 문충(文忠). 조선 중기 문신. 글씨에 뛰어났는데, 그 서체는 이왕체를 본뜨고 전은 중체를 겸하였으며, 시조로 유고에 《오륜가》,《훈계자손가》등이 있고, 그 밖에도《가곡원류》등에 여러 편이 실려 있다.

김선원(金仙源)[한흥가라 65 페이지 / 전적]

김상용(金尙容, 1561~1637). 본관 안동. 자 경택(景擇). 호 선원(仙源) ·풍계(楓溪). 시호 문충(文忠). 조선 중기 문신. 글씨에 뛰어났는데, 그 서체는 이왕체를 본뜨고 전은 중체를 겸하였으며, 시조로 유고에 《오륜가》,《훈계자손가》등이 있고, 그 밖에도《가곡원류》등에 여러 편이 실려 있다.

김선원(金仙源)[한흥가라 65 페이지 / 전적]

김상용(金尙容, 1561~1637). 본관 안동. 자 경택(景擇). 호 선원(仙源) ·풍계(楓溪). 시호 문충(文忠). 조선 중기 문신. 글씨에 뛰어났는데, 그 서체는 이왕체를 본뜨고 전은 중체를 겸하였으며, 시조로 유고에 《오륜가》,《훈계자손가》등이 있고, 그 밖에도《가곡원류》등에 여러 편이 실려 있다.

김선원(金仙源)[한양가라 64 페이지 / 전적]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인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을 말한다. 인조반정 후에 대사헌, 형조 판서, 우의정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왕족을 호종하고 강화로 피난했다가 이듬해 강화성이 함락되자 자살하였다.

김성일(金誠一)[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14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문신ㆍ학자(1538~1593).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峯). 선조 1년(1568)에 증광 문과에 급제하고, 1590년에 통신 부사로서 일본에 가서 실정을 살핀 후, 침략의 우려가 없다고 보고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 관찰사로 임명되어 의병 규합, 군량미 확보 등에 힘썼다. 저서에 ≪학봉집≫, ≪상례고증(喪禮考證)≫ 따위가 있다.

김성일(金誠一)[한흥가라 66 페이지 / 전적]

본관 의성(義城). 자 사순(士純). 호 학봉(鶴峯). 안동 임하(臨河) 출생. 조선 중기의 정치가·학자.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와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하여 임진왜란의 무방비로 맞이하게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파직되었다.

김성일(金誠一)[한흥가라 66 페이지 / 전적]

본관 의성(義城). 자 사순(士純). 호 학봉(鶴峯). 안동 임하(臨河) 출생. 조선 중기의 정치가·학자.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와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하여 임진왜란의 무방비로 맞이하게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파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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