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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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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金誠一)[한흥가라 66 페이지 / 전적]

본관 의성(義城). 자 사순(士純). 호 학봉(鶴峯). 안동 임하(臨河) 출생. 조선 중기의 정치가·학자.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와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하여 임진왜란의 무방비로 맞이하게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파직되었다.

김성필[화전가1 15 페이지 /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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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필[화전가2 15 페이지 /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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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주[화전가1 15 페이지 /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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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주[화전가2 15 페이지 /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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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흥(金淑興)[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51 페이지 / 전적]

1010년(현종 1) 거란의 성종(聖宗)이 침입했다가 이듬해 군사를 거두고 돌아갈때, 구주별장(龜州別將)으로 거란의 퇴로를 막고 중랑장(中郞將) 보랑(保良)과 함께 적을 쳐 무찔렀다. 1019년(현종10) 양규와 함께 공신의 녹권을 받고 뒤에 또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의 호를 받았다. 장군(將軍)에 추증(追贈)되었다

김시묵(金時黙)[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42 페이지 / 전적]

조선 시대의 문신(1722~1772). 정조의 장인으로 호조판서, 좌찬성 등을 지냈음.

김시민(金時敏)[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20 페이지 / 전적]

조선 전기의 무신(1554~1592). 자는 면오(勉吾). 임진왜란 때 왜적을 격파하여 영남우도 병마절도사로 특진하고, 진주성에서 분전하다가 전사하였다.

김시습(金時習)[한양가라 23 페이지 / 전적]

조선 세종 때의 학자(1435~1493)로 호가 매월당(梅月堂)이며,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 유·불(儒佛)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김시습(金時習)[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84 페이지 / 전적]

조선 전기의 학자(1435~1493)로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峯)이다.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승려가 되어 방랑생활을 하며 절개를 지켰다. 유·불(儒佛)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김신국(金藎國)[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34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문신(1572~1657). 자는 경진(景進). 호는 후추(後瘳).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적에게 큰 타격을 주고 참봉이 되었으며, 이후에 평안도 관찰사ㆍ우참찬ㆍ호조 판서를 지냈다. 병자호란 후 볼모로 가는 소현 세자의 이사(貳師)로서 심양까지 배종(陪從)한 뒤 귀국하여, 기로소에 들었다.

김실[당산조션가 5 페이지 / 전적]

미동이라는 마을의 김씨 성을 가진 남자의 부인.

김실(金室)[쳑사대희승부가(쳑사희승부가) 2 페이지 / 두루마리]

김씨의 아내. 이하 이실(李室)․홍실(洪室)․권실(權室)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室”은 남편의 성씨 아래 붙여 그 성씨의 아내임을 표시한 말임. 이하 성씨와 “室”의 합성으로 이룬 표기는 모두 이와 같다.

김실(金室)[동국조선가 3 페이지 / 두루마리]

김씨성을 가진 남편의 아내를 이름.

김실(金室)[헌수가라 2 페이지 / 두루마리]

김씨 집안 며느리.

김씨 문호(金氏門戶)[쳑사대희승부가(쳑사희승부가) 1 페이지 / 두루마리]

김씨 집안. 김씨 문벌(門閥).문호(門戶) : 문벌.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사회적 지체.

김씨가랑(金氏家郞)[동국조선가 4 페이지 / 두루마리]

김씨 가문의 신랑을 이름.

김안로(金安老)[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07 페이지 / 전적]

조선 전기의 문신(1481~1537). 자는 이숙(頥叔). 호는 희락당(希樂堂)ㆍ퇴재(退齋)ㆍ용천(龍泉). 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함께 유배되기도 하였으며, 그 후 우의정ㆍ좌의정 등을 지냈다. 공포 정치를 단행하였으며, 문정 왕후의 폐위를 도모하다가 사사(賜死)되었다. 저서에 ≪용천담적기(龍泉淡寂記)≫가 있다.

김안로(金安老)[석천집(石川集二-五)2-5 154 페이지 / 전적]

김안로(金安老, 1481-1537). 호는 희락당(希樂堂), 자는 이숙(頤叔).

김알지(金閼智)[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36 페이지 / 전적]

신라 때 경주 김씨의 시조(65~?). 금궤에서 나왔다고 하여 성을 김이라고 했다. 그의 7대손인 미추(味鄒)가 12대 첨해왕의 뒤를 이어 등극함으로써 신라 왕족에 김씨가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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