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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金玉均)[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54 페이지 / 전적]

조선 고종 때의 정치가(1851~1894). 자는 백온(伯溫). 호는 고균(古筠)ㆍ고우(古愚). 근대 부르주아 혁명을 지향했던 급진 개화파의 지도자로 갑신정변을 주도하였으며, 우리나라 개화사상의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고종 31년(1894)에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자객 홍종우(洪鍾宇)에게 살해되었다. 저서에 ≪기화근사(箕和近事)≫, ≪치도약론(治道略論)≫, ≪갑신일록(甲申日錄)≫ 따위가 있다.

김옥균(金玉均)[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56 페이지 / 전적]

조선 고종 때의 정치가(1851~1894). 자는 백온(伯溫). 호는 고균(古筠)ㆍ고우(古愚). 근대 부르주아 혁명을 지향했던 급진 개화파의 지도자로 갑신정변을 주도하였으며, 우리나라 개화사상의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고종 31년(1894)에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자객 홍종우(洪鍾宇)에게 살해되었다. 저서에 ≪기화근사(箕和近事)≫, ≪치도약론(治道略論)≫, ≪갑신일록(甲申日錄)≫ 따위가 있다.

김우덕[화전가1 14 페이지 /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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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덕[화전가2 14 페이지 /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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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명(金佑明)[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28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문신(1619~1675). 현종의 장인으로 청풍부원군에 봉하여졌고, 영돈령부사가 되었다. 송시열과 서인에 속하였으나 나중에 사이가 벌어져 한당(漢黨)의 중진이 되었다.

김유((金瑬)[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13 페이지 / 전적]

조선 인조 때의 문신(1571~1648). 자는 관옥(冠玉). 호는 북저(北渚). 인조반정 때에 공을 세워, 정사공신이 되었다. 병자호란 때에는 영의정으로서 최명길 등과 더불어 화의를 주장하여 왕이 항복하게 하였다. 시문에 뛰어났다.

김윤후(金允侯)[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58 페이지 / 전적]

고려 고종 때의 승장(僧將)(?~?)으로 백현원(白峴院)에서 수도하다가, 고종 19년(1232) 몽고가 침입했을 때에 몽고 제국의 장군 살리타를 사살하였다.

김응남(金應南)[백세보중(百世葆重 四)4 64 페이지 / 전적]

호는 두암 또는 자암 자는 중숙 원주인으로 선조 때 문과.

김응서(金應瑞)[한흥가라 96 페이지 / 전적]

김경서(金景瑞, 1564~1624)의 초명(初名).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 김해. 자 성보(聖甫). 시호 양의(襄毅). 임진왜란 때 평양 방위전에서 대동강을 건너려는 적을 막고 명나라 이여송의 군대와 함께 평양성을 탈환했다. 명나라가 후금을 치기 위하여 원병요청을 하자 출전했고 금나라 군대에 항복하여 포로가 되었다가 적정을 기록하여 고국에 보내려다 처형되었다.

김응서(金應瑞)[한양가라 94 페이지 / 전적]

조선 선조 때 무신(1564-1624)으로 임진왜란 때 많은 무공을 세우고, 포도대장, 북로 방어사 등을 지냈다. 명나라의 요청으로 후금을 치기 위하여 출정하였다가 강홍립이 항복할 때 함께 포로가 되었으나, 적정(敵情)을 기록하여 조선에 보내려다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김응서(金應瑞, 1564-1624)[팔도안희가 4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평양 방위전에서 대동강을 건너려는 적을 막고 명나라 이여송의 군대와 함께 평양성을 탈환했다. 명나라가 후금을 치기 위하여 원병요청을 하자 출전했고 금나라 군대에 항복하여 포로가 되었다가 적정을 기록하여 고국에 보내려다 처형되었다.

김응하(金應河)[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29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무신(1580~1619). 자는 경의(景義). 삼수 군수ㆍ북우후(北虞侯) 등을 지냈으며, 광해군 11년(1619)에 명나라의 원병 요청으로 만주의 건주위(建州衛)를 치러 출정하였다가 전사하였다.

김이정(金而精)[송강집(松江集三)3 78 페이지 / 전적]

김취려(金就礪)의 자(字)이며 퇴계 문인(退溪門)임.

김익주(金益主)[복션화음록 3 페이지 / 전적]

가공의 인물로 규방가사에 흔히 나오는 이름이다.

김인문(金仁問)[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25 페이지 / 전적]

신라의 장군ㆍ외교관(629~694). 자는 인수(仁壽).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로 당나라에 파견되어 나당 연합군을 조직하는 데 성공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효소왕으로부터 태대각간에 추증(追贈)되었다.

김인문(金仁問)[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34 페이지 / 전적]

신라의 장군ㆍ외교관(629~694). 자는 인수(仁壽).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로 당나라에 파견되어 나당 연합군을 조직하는 데 성공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효소왕으로부터 태대각간에 추증(追贈)되었다.

김인문(金仁問)[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47 페이지 / 전적]

신라의 장군·외교관(629~694)으로 자는 인수(仁壽)이다.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로 당나라에 파견되어 나당 연합군을 조직하는 데 성공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효소왕으로부터 태대각간에 추증(追贈)되었다.

김인준(金仁俊)[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59 페이지 / 전적]

김준(金俊), 고려 시대의 무신(?~1268)으로 초명은 인준(仁俊)이다. 고종 45년(1258)에 최의(崔竩)를 살해함으로써 최씨의 무단 정치를 타도하고 왕권을 회복하였다.

김인후[팔역가(八域歌) 38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 도학자

김인후(金麟厚)[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11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문신ㆍ유학자(1510~1560).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ㆍ담재(湛齋). 중종 35년(1540)에 문과에 급제하고, 설서ㆍ부수찬을 거쳐 옥과 현령을 지냈으나,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낙향하여 성리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저서에 ≪하서집≫, ≪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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