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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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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기(金萬基)[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30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문신(1633~1687). 영돈령부사, 대제학을 지냈으며,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에 봉하여졌음.

김면(金沔)[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21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 학자 겸 의병장. 이황 문하에서 성리학을 연마하고,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다. 임진왜란 때 조종도 ·곽준 ·문위 등과 거창 ·고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저서에《송암실기》가 있다.

김명원(金命元)[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16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문신(1534~1602). 자는 응순(應順). 호는 주은(酒隱). 이황의 문인(門人)으로서, 임진왜란 때 팔도 도원수로 참여하고 좌의정에 이르렀다.

김명원(金命元)[백세보중(百世葆重 四)4 56 페이지 / 전적]

조선의 도원수.

김문경(金文敬)[송강집(松江集四)4 3 페이지 / 전적]

신독재선생(愼獨齋先生)

김문근(金汶根)[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48 페이지 / 전적]

조선 후기의 문신(1801~1863). 자는 노부(魯夫). 철종 2년(1851)에 딸이 왕비로 책봉되자 영은 부원군(永恩府院君)이 되었고, 금위대장, 영돈령부사 따위를 지냈다. 안동 김씨 세도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김문근(金汶根)[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52 페이지 / 전적]

조선 후기의 문신(1801~1863)로 철종 2년(1851)에 딸이 왕비로 책봉되자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이 되었고, 금위대장, 영돈령부사 등을 지냈음.

김문기(金文起)[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86 페이지 / 전적]

조선 전기의 문신(1399~1456)으로 자는 여공(汝恭), 호는 백촌(白村)이다. 함길도 관찰사, 공조 판서를 지냈다. 세조 2년(1456)에 단종 복위 모의에 가담하였다가 사육신과 함께 살해되었다.

김방경(金方慶)[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60 페이지 / 전적]

고려 시대의 명장(1212~1300)으로 자는 본연(本然)이다. 삼별초의 난을 평정하였고 원나라가 일본을 정벌할 때 고려군 도원수로서 종군하였다.

김병국(金炳國)[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48 페이지 / 전적]

조선 후기의 대신(1825~1905). 자는 경용(景用). 호는 영어(穎漁). 철종 1년(1850)에 문과에 급제하여, 육조의 판서와 영의정을 지냈다. 안동 김씨 세도의 권세가로, 흥선 대원군의 통상ㆍ수교의 거부에 동조하였다.

김병국(金炳國)[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54 페이지 / 전적]

조선후기의 대신(1825~1905)으로 철종 1년(1850)에 문과에 급제하여, 육조의 판서와 영의정을 지냈음. 안동김씨 세도의 권세가로 흥선대원군의 통상·수교의 거부에 동조하였음.

김병기(金炳冀)[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48 페이지 / 전적]

조선 후기의 권신(權臣) (1818~1875). 자는 성존(聖存). 호는 사영(思穎). 훈련대장과 육조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대원군 집정으로 한때 한직에 머물다가 다시 좌찬성에 올랐다. 저서에 ≪사영집≫이 있다.

김병덕(金炳德)[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48 페이지 / 전적]

조선 후기의 문신(1825~1892). 자는 성일(聖一). 호는 약산(約山). 이조 판서, 수원부 유수, 우의정, 좌의정 등을 지냈으며, 저서에 ≪속간록(續諫錄)≫이 있다.

김병로(金炳魯)[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74 페이지 / 전적]

법조인ㆍ정치가(1887~1964). 호는 가인(街人). 일본에 유학 중 ≪학지광≫의 편집장을 지냈고, 1927년에는 신간회의 중앙 집행 위원장을 지냈다. 8ㆍ15 광복 후 한민당(韓民黨) 창설에 참여하고, 대법원장 등을 지냈다.

김병학(金炳學)[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48 페이지 / 전적]

조선 후기의 문신(1821~1879). 자는 경교(景敎). 호는 영초(穎樵). 철종 4년(1853)에 정시 문과에 급제하고, 장령(掌令)과 사간(司諫)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보수파의 척화론자로서 가톨릭교 탄압을 주장하였다. ≪철종실록≫과 ≪대전회통≫의 편찬에 관여하였다.

김부식(金富軾)[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55 페이지 / 전적]

고려 시대의 학자이자 정치가(1075~1151)로 자는 입지(立之), 호는 뇌천(雷 川)이다. 묘청의 난을 평정하여 수충정난정국공신(輸忠定難靖國功臣)의 호를 받았으며 인종 23년(1145)에

김사계[팔역가(八域歌) 46 페이지 / 전적]

광신인, 김장생, 문묘 배향, 송시열, 송준길 등 문하 배출

김사중[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三)3 64 페이지 / 전적]

「金士重」― 이름은 千鎰이요 號는 健齋요 彦陽人인데, 少孤하여外家에서 長成하였으며 一齋 李恒에게 受學하였다. 遺逸의 薦으로 持平을 제수받았으며, 壬辰倭亂에 羅州에서 倡義하여 精銳數百名을 거느리고 湖西에 당도하자 衆이 數千에 달하여 軍勢가 稍振되었다 水原에 들어가 幕下士 梁山璹등을 보내어 行在所에 䟽를 올리고 兵을 옮겨 江華城으로 들어갔는데, 朝廷에서는 判決事를 제수하고 倡義使의 號를 내렸다.

김사형(金士衡)[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76 페이지 / 전적]

고려 말기에서 조선 전기의 문신(1333~1407)으로 자는 평보(平甫), 호는 낙포(洛圃)이다.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밀직사(密直司)로 대사헌을 겸하다가, 이성계를 받들어 조선개국에 크게 공을 세워 일등 공신이 되었으며, 쓰시마 섬 원정에도 참가하였다.

김상(金相)[백세보중(百世葆重 四)4 47 페이지 / 전적]

김수, 선조 때의 명신, 임란 시에 군량미 비축에 공이 있어 김상으로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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